[뉴스] 정동영, DMZ 출입통제에 "국가체면 말이 아냐…안보실도 불허돼"(종합)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설승은 김철선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3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비무장지대(DMZ) 출입이 최근 불허된 사실을 공개하면서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DMZ 출입 허가권 행사 관행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DMZ의 평화적 이용 및 지원 법률안 관련 입법공청회 축사에서 "얼마 전에도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에 가는 걸 불허당했다"고 언급했다.
국방부는 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28일까지 40여일간 중부전선 DMZ 내 백마고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실시한 바 있다.
[뉴스] 북, 베이징서 중공군 6·25참전 기념연회…"북중친선 발양"
리룡남 주중 북한대사가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 75주년 기념일(10월 25일)을 맞아 베이징에서 연회를 열고 양국의 친선을 다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리 대사가 25일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기념연회를 마련했다고 사흘이 지난 28일 보도했다.
[뉴스] 주북 中대사, 6·25참전 75주년 기념 연회…친선 강조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 75주년 기념일(10월 25일)을 맞아 연회를 열고 양국의 친선을 과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왕 대사가 전날 북한 평양의 중국대사관에서 연회를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뉴스] 김정은, 6·25 중공군묘 참배…北 "북중친선 불패의 생명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6·25전쟁 참전 75주년 기념일(10월 25일)을 맞아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를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날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뉴스] 北, 6·25 참전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 보수공사 착공
북한이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75주년을 앞두고 중국인민군의 묘지를 보수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황해북도 신평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 개건보수공사 착공식이 22일 현지에서 진행"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사회/문화]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당시는 경호원과 당중앙위원회 지도원(부원)이 서기로 동행했다. 촬영소에는 사무실도 있었고 간소한 침실도 꾸렸다. 그때부터 예술영화촬영소에는 부비서 직책만 있었다. 당비서는 사실상 김정일인 셈이다. 모든 영화사업은 김정일의 지도와 비준을 받아야 했다.
● 김현숙 우인희 성혜림 세 여인의 배우생활의 연도를 돌아보자.
김현숙은 1953년 6·25전쟁이 끝나면서 영화촬영소 현지에서 입문한 중학교 졸업생이었다. 집이 근방이라 촬영소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서성였다. 그들 중 눈에 짚이는 처녀가 17세 김현숙이었다. 영화인들이 그를 불러 몇 동작을 찍어 돌려보니 배우로 품이 있었다. 특히 앞으로 가면서 뒤로 돌아서 웃어보는 모습이 귀엽고 아름다웠다...
[통일/남북관계]
“6·25전쟁 75주년 맞아 숨어 있던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증언집 『호국영웅들의 이야기』 출간”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20여 명 참전용사의 실명 증언 수록,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출간된 『호국영웅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쉽게 “과거”라 부르고 지나쳐왔던 전쟁의 한복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군사 기록이 아니다. 이름 없는 병사, 전투의 최전선에 섰던 노병,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들려주는...
[사회/문화]
6 · 25 전쟁을 서정적으로 그려 낸 뛰어난 전쟁 문학
〈소년병과 들국화〉는 한국교육개발원 고(故) 신세호 원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6 · 25전쟁 이야기예요.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에게 큰 비극이 시작되었을 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주인공 소년은 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소년병이 됩니다. 북진하는 국군 부대의 일원이 된 소년병은 고향 마을에 가 보았지만 가족의 피란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을 경계로 국군과 인민군이 대치하고 있던 어느 날, 소년병은 부대에 남은 단 한 발의 총알을 장전하고 정찰에 나섭니다. 반대편에서는 누런 군복의 병사가 언덕을 기어 올라옵니다. 병사는 들판에 핀...
[사회/문화]
...“6ㆍ25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두 세대가 훨씬 더 지난 시간이다. 전쟁 트라우마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흐려지는 면이 있지만 그대로 전수되거나 더 깊어지는 면도 있다. 대형 참사나 이번 내란 사태 같은 일을 겪을 때다. 전쟁 당시 가해자들이 피해자 유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발언을 할 때, 겪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그 사태를 악의적으로 떠벌일 때도 더 깊어진다. 이런 말을 밥 먹듯 하는 극우들이 준동할 때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이제껏 봐왔듯이 이런 트라우마가 살아 있으면 민주화는 한없이 더디게 된다. 지역감정도 사라지지 않는다. 남북 화해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이 트라우마의 치유 없이 평화와 통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는 6.25전쟁이...
[정치/군사]
...조봉암, 조소앙과 안재홍 등의 진보적 인물들과 정치적 유동성이 풍부한 무소속의원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 대통령을 통한 정권교체, 친일 청산이 충분히 가능했는데도 직후인 6·25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무산된 것은 천추의 한이며, 북한이 적반하장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것은 지독한 선전·선동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에는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은 주류세력과 국내 민족주의자들이 결집하여 있었다. 김일성의 회유를 물리치고 남으로 내려온 김구, 6·25전쟁에 참전한 김구의 아들 김신(공군참모총장), 임정 최고의 이론가 조소앙, 국회의장 신익희, 부통령 이시영,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 광복군사령관 지청전, 초대 국방부장관 이범석, 미군정...
[학술논문] 6·25 전쟁 시기, 국가주의 시와 중도의 지형
6·25 전쟁 시기에 첨예하게 표면화된 남·북한 국가주의의 패권적 대립은 해방 이후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된 중도적 노선의 거점을 와해시킨다. 이점은 정치적 노선은 물론 문학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6․25전쟁에 대응한 시적 양상에서 관념적인 전쟁 이념보다 생활세계의 구체가 시상의 주조를 이루는 시편들에서 중도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시편들은 국가주의 시편들이 지닌 관념적 편향의 생경하고 경색된 어법과 달리 시적 진정성과 경험적 보편성을 성취해내고 있다. 또한 전쟁 문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휴머니즘과 반전의식을 환기 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 시편에서 남북한의 국가주의 시편들의 관념적 허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전쟁 시편에서 중도적...
[학술논문] 쉬츠(徐遲)와 6ㆍ25전쟁 문학 ― 1950년대 초의 르포르타주 작품을 중심으로
本論文通過對徐遲(1914-1996)在六二五戰爭(the Korean War)期間創作的報告文學作品的分析, 來考察中國作家對六二五戰爭的認識。這不僅有助於我們從總體上理解六二五戰爭, 而且有助於我們理解在中國現代文學史上風靡一個時期的報告文學創作思潮, 以及徐遲在文學史上的地位。在以六二五戰爭爲素材的徐遲報告文學作品中, 雖然具體描寫了戰爭的慘狀, 但是爲了高揚愛國之心, 爲激發對“敵軍”的敵愾之心, 使用了誇張法, 加入了虛構成份。其作品中出現的北韓人經常被描寫成偉大的英雄人物, 同時在描寫人們的不幸時, 爲激發敵愾之心, 常有很極端的描寫。像這樣, 虛構地敘述事件和人物, 是違反報告文學的創作原則的。這一點顯然降低了其作品的真實性。以六二五戰爭爲素材的徐遲報告文學作品裏出現的特點, 應該結合中國的政治狀況, 特別是對知識分子的思想改造運動來把握。他迎合國內外形勢和中國共產黨的文學方針...
[학술논문] 언더우드 부인 저격사건의 진상과 의미
...것이다. ③ 이승만 암살배후설과 ④ 불특정 대상을 목표로 한 사회혼란 유도설 등은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거나 추상적이라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직전의 남북, 좌우, 미소 등의 극심한 냉전적 대치 상황 속에서 발생하였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은 미국뿐 아니라 우익을 대변하던 기독교(특히 개신교) 세력에 대해서도 강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미국인 선교사 암살’이라는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중요한 원형적 틀을 제공한 상징적 사건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이 사건은 당시 남한 사회, 특히 한국 기독교의 반공 이데올로기 확산도 자극하였으며, 6ㆍ25전쟁 이후 고착화된...
[학술논문] 근촌(芹村) 백관수의 생애와 정치이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과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으로 정부 수립의 기초를 세우는데 진력하였다. 한편 근촌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이 독재화의 경향을 보이자 이에 저항하였고, 이는 곧 이승만과의 관계악화로 나타났다. 근촌이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이승만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근촌의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낙선 된지 오래지 않아 6․25전쟁이 일어났고 북한으로 납북된 그는 남한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 1961년 3월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근촌의 정치이념은 그가 평생 걸어온 조국의 독립과, 독재에 대한 저항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와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평생 선비기질을 견지하였고, 이러한 이념을 구현하고 지키는데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근촌을 존경하는 후학들이...
[학술논문] 최호진의 경제사 연구와 저술의 사회사: 1940~60년대
...지성사, 사학사를 추적하여 본 것이다. 책이란 초판본이든 개정판본이든 그것이 출간된 시기의 정치, 사회, 사상적 환경과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독특한 역사적 정체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는 최호진의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경제사 책들에는 해방직후 확대된 사상의 자유와 마르크스주의에의 열기, 남북한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및 반공체제 강화에 따른 이데올로기 현실의 악화, 저자․출판사․독자들의 6․25체험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입장의 변화가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르크스의 유고인 「자본제생산에 선행하는 제 형태」의 발굴과 총체적 노예제론으로 대표되는 세계학계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 1960년대에 이루어진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에 대한 발전적 시각에서의 연구들이 단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