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향후 항미원조 전쟁을 다룬 작품들은 중국의 대중문화에서 부단히 시도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아편전쟁’이 서구 문명에 의한 중화제국의 몰락이라는 ‘굴욕’을 상징한다면, ‘항미원조 전쟁’은 제국주의와 식민으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굴욕을 끊어내고 다시 일어선 ‘승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중심에는 ‘중국공산당’이 있다. 따라서 공산당이 집권하는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항미원조’에 내포된 ‘혁명’과 ‘내셔널리즘’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반미’와 ‘친북’의 기억은 이념보다는 국익에 따라 적절히 소환될 것이다. 350 마오쩌둥 시대와 달리 시진핑 시대의 항미원조 서사는 ‘공산당의 위대한 승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열강에 침략당해 온 중국’이라는...
[정치/군사]
개전전야와 전쟁발발에서부터 정전조인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김일성-모택동-스탈린 간 주고받은 ‘공개·미공개’ 암호전보와 극비서한 등 총504건을 날짜별 시간 순으로 짚는 모음집이 국내 처음으로 나왔다. ‘항미원조’로 출병을 결단, 압록강을 건너는 모택동과 김일성의 남침을 용인한 스탈린의 의중을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 당시 이 세 명의 정책결정자들 간에 오고간 기밀문건들을 통해 국내에 그동안 간헐적 공개에 그쳤던 중국과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정책결정 과정과 내막을 사안별 집중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도대체 왜, 한국전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걸까? 소련 기록보관소와 중국 문헌 속에서 찾아낸 문건 대상 한국전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션즈화 교수의 편저, 북경대 김동길 교수와 중앙대 이강범...
[정치/군사]
...줄곧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세계화의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회고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한반도,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난제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인류가 함께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류의 공통된 인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왕수쩡의 『한국전쟁』은 중국 역사 논픽션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냈다.” _ 모옌,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 ▲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중국 혁명사 3부작 완결판 ▲ 정전 60주년, ‘적군의...
[정치/군사]
...회고록에서 ‘잘된 것은 미군 탓, 안 되면 한국군 탓’ 하는 미 8군 사령관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백 장군이 지적한 것처럼 당시의 잘잘못을 기록해 귀감으로 삼으면서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분투했던 국군에 대해 애틋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때도 됐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김정일의 방중이나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북-중 관계에 변화 조짐이 보일 때 접경 도시 단둥에 종종 갔었다. 단둥 시가지 뒤편 잉화산에 세워진 항미원조기념관에도 들렀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 취재차 단둥에 가서 과거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최대 관문일 뿐만 아니라 6·25전쟁의 상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 ‘단교(斷橋)’ 위에 중공군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1950년...
[학술논문] 抗美'와 ' 援朝'의 외연과 그 내포 고찰 - 《詩選(1953.9-1955.12)》을 중심으로
...도출하게 되었다. 첫째, ‘항미’는 ‘냉전이념의 외피’를 입고 한국전쟁 시기 중국의 ‘소련일변도’ 외교방향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냉전구호였기에, 이와 관련된 《시선》 속 작품에는 ‘친소’와 ‘반미’의 극단적 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념’을 내세운 양비론적 태도는 미소패권의 냉전질서에로의 ‘半강압적’ 편성을 요구받았던 당시 중국의 국제정치적 처세를 대중적으로 구호화한 측면이 강했다고 판단된다. 중국공산당은 태평양전쟁 전후부터 한국전쟁 종전협정까지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련과 1950년 2월의 ‘중소동맹’ 결성 전까지 동북문제 등을 포함하여 제반 영역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은 양비론적인 ‘이념’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학술논문] 1950년대 “항미원조운동” 중 나타난 한반도 인식 ― 국내 시사선전을 중심으로
Historical memories have always been obstacle that hinders the progress of the reconciliation within three countries of East Asia. In order to overcome this obstacle, we need to trace back to the time when the actual event occurred back in 1950s. In year 1950,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as accelerated the emergence of Cold War in Asia. Due to the rapid spreading of the cold war in Asia, it has
[학술논문] 연변의 문혁과 그 문학적 기억
...문혁과는 차별화되는 연변 지역 문혁의 특수성을 문학적으로 기억하고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김관웅의 <청명날>과 리혜선의 <빨간 그림자>는 연변 문혁의 참혹한 진실을 배경자료로언급하고 있다. 김관웅의 <신념>은 <민생단사건>의 목격자이자 생존자인 최영감이 해방전쟁과 항미원조를 겪은 후 결국 반우파투쟁과 문혁에서 다시 ‘우파’로, ‘반혁명분자’로 몰려 억울하게 고문과 혹형을 당하고 끝내 감옥에서 죽어간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는 연변 문혁의 특수성과 민족주의 내지 민족 갈등으로 표상되는 연변 문혁의 역사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으며 연변 문혁의 특수성이 결국은 30년대 만주의 항일연군부대에서 자행되었던 참혹하고 무자비한 <민생단사건>에 이어짐을 의미하고...
[학술논문] 냉전 초기 중·북 문학 교류의 한 장면 - 바진과 이예의 전장 기록에 나타난 이태준 -
1952년은 냉전의 심화와 한국전쟁의 장기화로 동아시아 전체가 이념과 무력 충돌의 긴장 속에 놓여 있던 시기로,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국가적 구호 로 내세우며 북조선과의 정치·군사·문화적 연대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중국 문학계는 ‘공산주의 국제주의’의 이념을 수행하기 위한 문화 실천의 일환으로 북조선 현장 체험과 기록을 장려했고, 이때 바진(巴金)은 대표적인 문학인으로서 두 차례 북조선을 방문하게 된다. 바진은 이미 ‘격류 3부작’을 통해 중국 현대문학의 중심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나, 1950년대 초중반의 정치적 전환기에 접어들며 ‘개인주의적 감상주의’나 ‘공상적 혁명성’ 등으로 비판을 받았고, 그에 따라 문학적 정체성의 조정이 요구되는 시점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필된 『赴朝日記(조선...
[학술논문] 감정에서 스펙터클로: 1980~90년대 ‘항미원조(抗美援朝)’ 영화의 기억 정치와 서사 전환
1980년대 초의 ‘항미원조’ 영화는 문화대혁명 이후 개인의 감정과 윤리를 회복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기존의 집단 영웅주의와 계급 투쟁 서사를 넘어서는 감정 중심의 도덕 서사를 시도하였다. <심현(心弦)>(1981)과 <심령심처(心靈深处)>(1982)는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개인의 내면, 선택, 책임, 윤리의 문제를 전면화하면서, ‘항미원조’ 전쟁을 개인감정의 차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여전히 감정의 귀속처를 공동체 윤리와 국가 정당성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계 또한 분명히 노출되었다. 이후 1983년부터 1991년까지의 10년은 ‘항미원조’ 영화가 텍스트로 실종된 기억의 공백기였다. 이 시기의 부재는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정치적 봉인, 문화적 재정렬, 감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