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왕에 봉했다”는 점에 비추어 ‘조선’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의 국호이므로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의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_(113~114p) 제2부 ‘대한’의 뿌리를 찾아서, 2장 고종의 ‘칭제건원’, 그 속뜻은?
고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 국호가 된 ‘한(韓)’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솔직히 우리는 그동안 나라를 의미하는 ‘한’ 자라면 중국 한나라를 의미하는 ‘한(漢)’ 자를 먼저 떠올렸다. 장기판의 왕인 ‘한’도 이 ‘한(漢)’이 아니던가...
[사회/문화]
이 책에 대한 일러두기로 시기 구분, 집필 대상 교육과정, 집필 방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기 구분은 한국교육사학회 교수님들과 협의하여 제1부 전통시기를 고조선에서 조선시대로, 제2부 개화기를 1881년부터 1910년까지로, 제3부 일제강점기를 1910년부터 1945년까지로, 마지막 제4부를 1945년 해방 이후 교육과정 시기로 하였다. 이 책의 기초가 된 1945년 이전 교육과정 연구에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가 주가 되다 보니 개화기 이전을 모두 ‘전통시기’로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개화기를 규정하는 시점과 교육과정에서의 시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이 책의 각 장이나 부록의 표에서도 그 관점이 소개된다. 예컨대, 개화기의 시작을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교육학...
[학술논문] 2000년대 북한 아동용 도서에 그려져 있는 단군·고조선과 서술 변형의 역사·고고학적 배경
...강인숙과 함께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의 단군·고조선관과 고조선사를 새롭게 재편하는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손영종 등이 참여하였다. 이 도서에는 전근대의 일부 도가류 저작과 20세기 초 이후 대종교 계열 인사의 저작물에 윤색 가공되거나 위작되어 있는 단군·고조선 관련 기록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도가류와 대종교 계열 일부 인사의 단군․고조선 관련 기록은 역사적인 맥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이를 그대로 교육할 경우 한국사의 기본 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된다. 본고에서는 『조선력사인물이야기그림책 단군』에 그려져 있는 단군·단군조선을 소개함과 동시에 이 발간물에 반영되어 있는 단군·고조선 관련 인식의 역사·고고학적 배경과 그 문제점에 대해 살펴 보았다.
[학술논문] 遼東~西北韓地域의 細形銅劍文化와 古朝鮮 - 위만조선 물질문화의 형성과정과 관련하여 -
...청동유물이 확인되는 것이 주목된다. 이는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후 기원전 3세기대의 문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는 윤가촌유형의 요소들이 보이는데, 이를테면 완전한 직인형의 신송리식동검, 두형토기를 부장하는 적석목관묘, 파수부호를 사용하는 합구식 옹관묘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전국말~전한초의 위만집단과 관련된 요소들일 가능성이 있다. 위만조선 최고 지배층은 철제무기와 거마구로 정치적인 권위를 표현하였는데, 거기에는 燕系와 漢系의 전통이 섞여 있었으며, 이후 匈奴系 문물까지 수용하여 대외 교류의 정점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낙랑 초기 자료에는 위만조선의 물질문화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고조선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들은 주로 한반도의 세형동검문화에 집중되어 왔다.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설을 고려하면 요동지역의...
[학술논문] 최근 북한 학계의 고조선 연구 동향 - 2000년 이후를 중심으로 - FALSE
Studies on Old Joseon by the North Korean circles of history had experienced great changes from the previous Yodongjungsimseol to Pyeongyangjungsimseol after discovering the tomb of Dangun in 1993, with regard to theories of Old Joseon’s main territory. According to the Pyeongangjungsimseol, the main territory of Old Joseon was Pyeongyang, not Yodong and the oldest estimated age traced back to
[학술논문] 북한지역 고인돌유적의 특징과 성격
본고는 최근의 연구성과에 근거하여 북한지역 고인돌의 구조적 특징과 형식별 분포관계를살펴보고 나름의 편년과 획기를 마련하여 이지역 고인돌의 단계별 특징 및 성격을 고찰하고자작성되었다. 북한지역고인돌의출현과확산과정은中國遼東지역과연계하여 살펴보아야한다. 대동강하구의 서해안지역에서는 기원전 13~12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탁자형고인돌이 축조되는데,고인돌의 구조는 물론 출토유물상에 있어 동시기 遼東半島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양자는동일한계통의사람들이축조한것으로볼수있다. 개석형고인돌은太子河流域의馬城子文化가 주변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 중 요동반도의 고인돌문화와 접촉하여 출현한 것으로이해하였다. 가장빠른연대를보이는것이鳳城東山유적에서확인되며커다란덮개돌밑으로토광형의묘실을두었고, 그내부에서는 마성자문화후기단계의전형적인토기가
[학술논문] 中國 東北地域의 靑銅器文化와 古朝鮮의 位置 變動
... 古朝鮮과 관련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요동반도의 崗上類型을 “發”로 비정하였다. 기원전 1000년기 후엽에 이르면, 중국 동북지역의 琵琶形銅劍文化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中原文化의 확장과 琵琶形銅劍文化의 급격한 쇠퇴 및 變形琵琶形銅劍文化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요동지역의 變形琵琶形銅劍文化는 요동반도 ‒ 심양지역의 尹家村類型, 요동 북부 ‒ 서북한지역의 上堡類型, 길림성 중부의 西荒山屯類型으로 구분된다. 尹家村類型은 중원문화적 성격이 강하게 가미된 점을 감안하면, 戰國~秦·漢代의 遼東郡과 관련될 것이다. 그리고 재지적 성격이 강한 上堡類型과 西荒山屯類型은 각각 秦開 침입 이후의 古朝鮮 및 衛滿朝鮮, 그리고 扶餘와 관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