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北 단군릉서 개천절 행사…민족보다 '문화유산' 초점 이동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이 개천절을 맞아 평양 단군릉 앞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4일 보도했다.
북한 매체들은 전날 단군릉에서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민족유산보호국 관계자, 평양 시내 근로자, 북한 체류 해외 동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천절 행사가 열렸다고 밝혔다.
[뉴스] 북한 추석 휴일은 '하루'…성묘 하고 가족·친지 음식 나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북한에서도 추석은 민족 명절로 보낸다. 통상 3일의 연휴 기간을 보내는 한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추석 당일인 6일 하루만 쉰다.
일반적으로 추석날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성묘가 끝나면 가족, 친척끼리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는 남측과 비슷한 풍경이다.
[뉴스] APEC 앞둔 추석 접경지서 '이산가족' 꺼낸 李대통령…'교류' 의지
이재명 대통령이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첫날인 3일 북한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교류를 제안했다.
남북 관계가 장기간 경색된 상태인 가운데 비정치적 사안부터 협력해 상호 신뢰를 쌓음으로써 관계 개선의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뉴스]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업그레이드…'DMZ 평화올레길' 조성 추진
이재명 정부가 16일 발표한 국정과제 123개 가운데 '평화공존과 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대북·통일정책분야 과제는 5개가 제시됐다.
우선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및 평화공존 제도화'를 위해 정부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전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뉴스] "시진핑, 열병식 통해 '경제둔화' 관심 분산 시도…통제력 과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통해 중국의 경제 둔화에 대한 내부 관심을 분산시켰다는 해석이 나왔다.
시 주석이 경제 성장 측면에서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부각된 행사를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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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소공동위원회는 1946년 4월에 조선 내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할 항목을 발표한 바 있었다. 1947년까지 이 항목에 대한 답신을 받았었는데, 여기에 국호와 국체(國體) 문제도 들어 있었다.
국호에 한정하여 답신을 살펴보면, 우파인 임정수립대책위원회는 ‘대한민국’, 좌파인 민족주의민족전선은 ‘조선인민공화국’, 중도파인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공화국’, 미군정의 입법기관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 제시했었다.
여기서 보듯 국체는 모두 ‘공화국’을 지향하고 있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군주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통일/남북관계]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기시한 적대적 대북인식의 산물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로도 남북은 무력통일의 의지를 거두지 않았고, 상대를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상상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물리적 단절과 이념적 대립 속에서도 협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8년 7ㆍ7 선언을 계기로 ‘민족공동체적 시각’이라는 새로운 틀이 등장하며 남북경협의 제도화를 견인했다. 이후 교역과 투자, 관광, 특구사업으로 이어진 남북경협은 협력의 지평을 넓혀왔지만, 정치적 이해와 군사적 긴장의 파고 속에서 번번이 확대와 위축, 재개와 중단의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이 책은 적대의 시대를 지나 협력의 물꼬가 트인 이후 정권마다 각기...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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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념관이 지향해야할 세가지 핵심 가치인 가족애, 이념 극복, 홍익인간 정신을 논의의 기본 프레임으로 하여 왜 기념관이 필요한가, 그리고 기념관의 운영 방침을 뒷받침할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이산가족의 아픔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민족적 비극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현대사의 중요한 교훈으로서 후대에 전승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남북이산가족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통일 교육과 세계평화 증진을 위한 국제적 교육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실향민들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사회/문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더욱 예측 불가능하다. 미국 대통령과 세기의 담판을 벌이는가 하면, 하노이에서의 결렬 이후에는 전통적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며 신냉전 구도 속에서 자신의 생존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통일'이라는 민족적 서사를 지워버리고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 책은 북한의 붕괴라는 막연한 기대나 비핵화라는 희망 섞인 관측에서 벗어나, '핵을 가진 북한'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김주애의 등장으로 4대 세습의 서막을 올린 수수께끼의 왕국...
[정치/군사]
...억압받던 이들에게 달콤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박헌영과 김단야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고, 여운형과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들까지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꿈꿨던 이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의 공산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워버리고, 일당 독재와 억압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민족 저항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외세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에서 비롯된 퇴행적 성격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과 만주, 중국에는 무려 아홉 개의 공산주의 단체가 생겨났고,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바라보았다. 상해파,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화요회,...
[학술논문] 한국 현대문학사와 아산 - 아산 문학의 네 좌표 : 이기영, 조영출, 이어령, 복거일-
...작고 문인 조영출과 이기영, 그리고 현역 문인 이어령과 복거일의 작품세계를 간략히 살펴본다. 이기영의 『고향』은 1930년대 대표적 농촌소설로서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이자 민족문학사의 정전으로 평가받아왔다. 이 작품은 농촌의 전통적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이 근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으로 교체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반영하며, 1920~1930년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급격하게 전개된 식민지 자본주의의 팽창과정과 피지배 국가에서 일어난 대응방식을 설명해주는 텍스트이다. 식민지 시대 조영출의 시세계는 전통적 서정과 모더니즘적 언어를 결합하였고, 민족주의적 저항시와 연극 활동은 월북 후의 행로를 예견케 했으며, 작사가로서의 활동은 대중을 향한 문학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평론가 이어령이 제기한 한국 리얼리즘 방법론의 단순성과...
[학술논문] 북한 민족주의 연구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내세웠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기저에 놓여 있었으나,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한 전통적 민족주의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체사상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면서 전통적 사회주의와는 차별이 강조되면서 민족주의가 등장할 토대가 마련되었다. 특히, 조국통일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적 맑스-레닌주의에서 주장하는 민족주의와는 결별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공통성보다는 언어나 핏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 북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실천이데올로기로 격상되었다. 붕괴되는 기존사회주의와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본격적으로 재정립시켰으며, 조국통일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도 민족주의를 수령의 영도체계와 결합시켰다. 이제 북한에게 민족주의는 체제유지를 위해 버팀목으로...
[학술논문] 선군시대 북한의 민족적 감성-2000년대 『조선예술』에 수록된 민요풍 노래를 중심으로-
이 글은 2000년대로 대표되는 북한의 선군시대에 창작되거나 소개된 민요풍의 노래를 분석함으로써 민요풍 노래에 나타난, 혹은 강요된 민족적 감성을 찾아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2000년대 창작되거나 소개된 민요풍 노래를 가사가 갖는 내용에 따라 선군영도와 군민일치, 농업, 강성대국건설, 김정일 가계 찬양, 통일, 그리고 여성을 주제로 한 노래들로 나누어 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민요풍 노래의 가사와 음계, 선율진행, 리듬 등에서 기쁨과 흥겨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의 감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2000년대 북한의 대외정치와 인민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민요풍의 노래를 통해 현재의 기쁨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노래함으로써 2000년대 정치구호였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를...
[학술논문] 최익한의 다산연구의 성과와 한계
...서학을 강조한 점도 이를통해 세계사적 시각, 보편적 기준을 찾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조선사회의 내부적인 변화 발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당대의 학문적 수준의 일천함, 근대와 해방의 출구를 세계사적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황과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가 드러난다. 반면 1955년 북한에서 작성한 『실학파와 정다산』은 연구성과의 축적과 한편으로는 북한이라는 사회 속에서 실학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민족적, 국가적 처지를 강조해야만 하였다. 그런 점에서 「여유당전서를 독함」이라는 글은 비록 신문글이라는 한계 속에서 작성하였지만 처음으로 다산에 대한 체계적인 작업을 한 것이고 최익한이 다산을 통해 극복하려는 당시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학술논문] 해방기 문화공작대의 의제와 성격
...경상남도로 출발한 것을 시작으로 충청도, 강원도, 경상북도에 파견되어 특히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상당한 관객을 유치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계속되는 검열과 테러로 인해 예술제는 수난사로 요약될 만큼 난관에 봉착했고, 미소공위도 사실상 결렬됨으로써 문화공작대는 8월초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공작대 활동은 정치사회적 정세 속에서 좌익문화진영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후의 가장 적극적인 문화적 실천이었다는 점, 연극공연의 내용이 일제식민지배의 민족 수탈의 공동기억을 환기시키면서 민족감정에 호소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예술활동에 대한 탄압이 가시화되고 지방 민중들과 직접 대면한 경험은 참여 문화인들의 전향과 월북 문제에 직간접적인 관련을 가지는데, 이는 차후 별도의 논문으로 보완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