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고려·거란 ‘30년 전쟁’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나서면서 동방경략을 시작했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의 대응은 거란과 고려 모두에게 과제였다. 거란은 군사력 증진과 전쟁을 통해 역량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나가며 요동 방면의 정복을 서둘렀다. 한편 고려는 보수적인 친중국 외교를 지키며 전통의 조공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거란은 986년 송태종의 북벌을 성공리에 막아낸 뒤 고려로 공격 방향을 바꾸어 993년 고려를 침공해 송과 고려, 송과 여진의 관계를 끊고자 했다. 고려는 거란에게 칭신납공할 것을 조건으로 강화를 맺는 대신 강동 6주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거란이 고려의 조빙약속을 받는 선에서 물러난 이유는 송 쪽으로 전선을 돌려야 했고 고려의 저항력도 가벼이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고려의 강동 6주 개척으로 여진 세력을 압록강 유역에서 몰아낸 것은 거란으로서도...
[학위논문] 남북한 고대사 인식 차이에 대한 계량적 분석 연구 : 북한의 민족주의적 고대사 인식을 중심으로
...막연하게 모든 원인을 특정 사관으로 몰아가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북한의 고대사 연구가 과연 민족주의적 요소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 남북한 고대사 인식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분석하여 보고 그 원인과 정책적 시사점을 차례대로 도출하였다.
연구 대상은 고대 국가의 성립 시기, 영토, 중심지, 민족 문화, 대외 관계 등 ‘민족주의 주제’로 한정하였으며, 그 중 남북한 고대사 인식에 대한 대표적인 텍스트를 상호 비교하여 75개의 샘플을 추출해냈다. 연구모델에서 독립변수는 북한식 민족주의로, 종속변수는 북한학계의 고대사 연구 결과가 되며, 최고 지도자의 교시가 매개 변수로서 작용한 것으로 가정하였다.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인과관계는 근거의...
[학술논문] 모리시마 미치오의 동아시아공동체 모형의 의미와 문제
...사고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그의 EAC 모형의 모범은 EU이며, 공동체의 경제운영에 대해서는 계획경제 방식을, 대외경제 정책의 기조는 리스트식의 보호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EAC 모형은 동북아시아를 범주로 삼고 있고, 공동체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유인 위에 선 경제건설공동체이며, 대외관계 구도는 신좌파식의 반미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모리시마의 모형은 지나친 이상론에 흐르지 않고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 가운데 기능적․ 실용적 관점에서 지역통합을 생각하고 있으며 비교적 완전한 체계를 갖춘 지역공동체 모형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모형에서는 작위적인 문화권 규정, 협소한 공동체 범위 설정, 일본인으로서의 태생적 한계,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국제관계 인식, 상호신뢰 구축을...
[학술논문] 중국의 대북한 동맹안보딜레마 관리대미인식과 북한지정학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조정(accommodation)에서 보다 사안에 따라서 대립하면서도 협력하는 능동적 인식과 정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연루의 위험이 낮아지고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한 북․중관계와 이에 따른 새로운 대미전략이 부상했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이후 대북정책에서 ‘영향력의 딜레마’를 학습했기 때문에 새로운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을 관리하고자 했다. 동시에 북한도 중국의 대미균형이 자국의 안보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인식한 동시에 중국을 결박(tethering)하여 대외관계에서 전략적 균형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동북아 국제관계는 상황적이라기보다는 중․미관계의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북․중관계도 부분적인 조정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학술논문] 高麗․後周 관계와 光宗의 영토 확장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o and Later Chou(後周) has long been focused on its goods-trading and adaptation of the culture to strengthen the dynasty of Goryo. However both Goryo and Later Chou had always faced Khitan which was formidable enemy. Goryo and Later Chou inevitably shared the pressure of Khitan at all times. In other words,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o and Later Chou cannot be expl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