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 중·소 논쟁 시기에도 소련에 반대하는 이유가 서로 달랐다. 결정적으로, 북한은 중·소 갈등 당시 중국 쪽으로 기울면서도 소련과의 관계를 배려하면서 ‘중국일변도’는 회피하고 ‘주체’를 강조하는 독자노선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쨌든, 항미원조 전쟁 이후 북·중 관계가 매우 긴밀한 시기로 평가되었던 해가 1963년이었다. 특히, 당시 미·소 양 진영으로부터 고립된 중국에 제3세계는 유일하게 교류할 수 있는 ‘세계’였고, 그중에서도 북한은 지리적 위치로나 전략적으로 소련을 견제하면서도 AALA 국가들의...
[정치/군사]
...있다.
특히 제3장 「얄타 비밀협약 폭로」편은 이승만이 어떻게 남다른 독립운동가였는지를 저자 복거일은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조선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영향 아래에 둔다’는 이 밝혀지지 않은 비밀협약에 대해 이승만은 ‘내가 바라는 것은 얄타협정에 서명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그것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게 하는 것’임을 목표로 삼았다. 증거가 없다고 물러설 이승만이 아니었다. 이승만은 1945년 국제연합 창립총회가 열린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을 소련 영향권 안에 둔다’는 비밀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책 『청동에 새길 이름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 왜곡되고 패덕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복거일...
[사회/문화]
...인물형인 영웅들의 고난과 희생, 극복하는 전쟁 서사를 통해 인민은 전쟁 영웅의 정신을 내면화한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 시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긍적적 인물을 내세웠던 ‘고상한 리얼리즘(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 방법도 변화한다. 게다가 소련에서 후르시초프가 주도한 수정주의로 현실성을 강조하는 문학이 대두되었는데 북한 문학에도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북한 문학에도 긍정적 인물과 부정적 인물뿐 아니라 전쟁 당시 이중적 태도를 보여 준 사람들을 등장시켜 소설의 현실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이런 변화가 등장인물의 성격이 조금 풍부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정치/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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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올 위기,
결코 한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단극 체제 붕괴로 혼란스러운 탈냉전의 흐름 속
구소련 지역에서 10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해 온
송금영 저자의 국제질서를 향한 매서운 진단!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는 우리가 맞이한 세계의 변혁 앞에서 빠르게 전후 사정을 파헤치는 동시에 국제질서에 대한 여러 화두를 제시한다. 주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대사관 등 구소련 지역과 주탄자니아 대사로 근무해 온 저자답게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황, 경제성장률과 무역 규모 등 최신 통계 자료를 반영하여 국제 정치경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사회/문화]
...한 수령문학(혹은 개인숭배문학)의 씨가 뿌려지고 싹이 트는 과정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문화통일전선의 형성, 전개, 그리고 소멸에 대해서 다음의 논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선, 해방 직후 소련이 한반도에서 추진했던 ‘인민전선’에 토대를 둔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건설 방안에 대한 박헌영과 김일성의 입장 차이는 문학자들과 문학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둘째, 해방 직후 서울에서 형성되어 한국전쟁 정전 직후 소멸한 문화통일전선에 대해서 남로당 계열, 김일성 계열(혹은 수령파), 그리고 소련계로 알려진 문학적 파벌의 입장이 무엇인가? 셋째, 문화통일전선의 형성을 둘러싼 문학자들 사이의 갈등이 순전히 문화전선분야 내부에서 발생한 문학자들끼리의 노선 갈등이었는가? 넷째, 1952년 12월...
[학술논문] 분단국 통일의 결정요인 분석:독일과 한반도 사례를 중심으로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요인을 분석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분단된 체제 간 ‘국제체제’와 분단국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협력’을 독립변수로, ‘통일의 달성여부’를 종속변수로 설정하고, 비교정책 연구방법 중 ‘차이법’을 적용하여 변수 간의 인과관계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국제체제는 통일의 외적 틀로 분단국간 교류협력은 내적 틀로 작용하고, 특히 독일과 한반도 분단의 배경이었던 ‘양극의 세력균형론적 현실주의’ 국제체제가 ‘다극의 국제사회론적 자유주의’로 변환되면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소련의 붕괴 후에도...
[학술논문] 두 개의 전후(戰後) - 서독과 일본의 과거사 극복 재조명
...과거사 극복은 왜 독일과 그토록 다르게 진행된 것일까?이 글은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극복 차이를 각각의 좁은 “국경” 테두리 안에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테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전후 인식은 이미 군정기에 미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의 시기에 수정되지 않았다. 한국 전쟁 등 동서 대립이 격화되었던 냉전기, 남북한 독재 체제 사이의 극한적인 대립, 중국과 소련의 갈등 등에 의해 이러한 초기의 전후 의식은 더욱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수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의 상황은 이와 전혀 달랐다. 독일은 유럽 사회에 다시 주권 국가로 인정받고 그들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철저한 과거사 극복이 필요했다. 법적, 정치적, 역사적 청산이 뒤이었다. 배상과...
[학술논문] 북한 문학교육의 제도적 형성에 관한 국제연구사적 문제제기
...북한교육 과정의 체계화는 이미 천리마 시대 이전에 대부분 이루어졌으며, 천리마 시대에는이에 대한 내실화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후의 논의들은 당시의 제도 담론, 문화 담론들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관련되어 북한의 내부 담론들, 역사적 자료들과 비교 대조하여 보았을 때 선행연구에서는 오류들이 상당히 존재하고있었다. 특히 구소련의 자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북한의 제도교육에 관한 국외 연구는학제와 커리큘럼 소개 위주의 연구임에도 이 분야가 연구의 불모지인 탓에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앞으로의 논의들이 이러한 잘못들을 정정하고교육 내적인 구성의 문제에 집중하는 연구로 전환되어 북한 사회 내부의 실상을 면밀히전달해야 국제적인 평화의 모색에 학문적 기여가...
[학술논문] 북한의 전후복구 시기 사회주의 진영의 원조와 ‘주체’의 제기(1953∼1955)
... 함께 소련파와 연안파의 경제노선 수정요구가 권력투쟁으로 발전하자 내부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감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체’가 최초로 제기되었으며 김일성은 소련파와 연안파를 비주체적이라고 비난하고 자신과 빨치산 세력의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결국 ‘주체’는 김일성이 자신이 처한 대내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북한 정치와 경제, 사상, 교육 등에 소련을 비롯한 외부의 영향을 지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학술논문] 중소분쟁시기 북방삼각관계가 조소·조중동맹의 체결에 미친 영향(1957~1961)
본 연구는 중소분쟁시기 북방삼각관계가 1961년 7월 「조소 · 조중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의 체결에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어떻게당시 서로 갈등관계에 있었던 두 사회주의 거대 국가인 소련 · 중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는지 그 원인과 과정, 그리고조약에 대한 북방삼국의 평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북한 체제의 존립과 발전에 있어서 중 · 소의 후견적 역할은 결코간과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동맹체결에 관한 논의는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단순 주어진 것으로 이해되는경향이 있었다. 새롭게 공개된 일부 구사회주의권 외교문서와 북한 1차 문헌에기초하여 논문은 크게 세 부분을 살펴보았다. 첫째,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분열이가속화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