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며, 공간적으로는 인접하지만 정치체계로는 차별적이다. 북한 영화(조선 영화)는 북한에서 짝하는 영화를 일컫는다. 북한 영화는 체재 선전의 핵심 도구였으나, 근래에는 대중성을 고려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집 문제〉 시리즈는 북한 코미디영화의 대명사이다. 이 시리즈는 초기 김정일의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흥행에 성공하여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고, 김정일이 다시 제작에 관여하게 되면서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대중성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우리집 문제〉 시리즈는 1973~1988년까지 북한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코미디영화이며, 북한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가 리희찬의 시나리오로 여러 연출가에 의해...
[경제/과학]
...도서들은 중앙의 정치와 제도를 중심에 두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방경제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기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지방경제를 “인민생활을 균형적으로 향상시키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경제발전 단위”라고 설명해 왔다.
《생산도시 순천》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대표적인 중화학공업 도시이자,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시장화의 중심지로 발전한 순천을 주목한다. 산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석탄과 석회석 같은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데다, 평양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입지 조건은 순천이 공업도시로 발달하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은 평안남도 중심에 위치한 순천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러한 북한의 중앙경제와...
[지리/관광]
...포함되는 역사 계통 박물관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전람관은 산업 및 기술 공학 부문 박물관과 기타 박물관으로 분류된다.
북한의 박물관은 공산주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과학문화 교양 기관이라는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입지 조건이 상당히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이 평양시의 중심부인 김일성 광장에 세워진 것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의 박물관은 인민대중에 대한 교양교육이라는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일찍부터 교육 기능이 발달돼 있었다. 이를 위해 북한의 모든 박물관과 사적관에는 해설 강사나 해설원이 배치돼 있다. 해설 강사들의 친절한 안내와 해설은 교양을 중시하는 북한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박물관에서는 유물 자체를...
[정치/군사]
... 민족적 치욕을 부각하는 중국의 근현대사 교육은 기존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에 봉착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다. (…)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가 통합 논리로 부상했으며, 특히 외부의 적에 대한 저항적 내셔널리즘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인민을 결속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항미원조는 장기간 이어질 중·미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새로운 불씨가 되어 인민을 단합하고 ‘대미항전’을 승리로 이끌 가장 강력한 ‘설욕’의 서사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384-385
[사회/문화]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였음을 밝힌다. 이어, 사회안전성의 역할과 업무, 방향을 제시하는 ‘인민보안법’과 ‘인민보안단속법’ 등 기본 법제를 검토한다. 4장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 사회안전성의 주민통제 특징과 역할을 분석한다. 김일성 시기 사회안전성 주민통제의 특징으로 사회통제의 제도적 기반 조성, 집단주의에 따른 통제, 체제질서 유지를 위한 공포통제를 도출한다. 김정일 시기 사회안전성의 주민통제의 특징으로는, 사회통제 법적 기반 조성, 비사회주의 행위통제의 시작, 계획경제 실패와 외부문물 유입 통제를 위한 공포통제를 도출한다.
5장에서는 『북한인권백서』와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김정은 시대 사회안전성의 주민통제의 유형과 특징을 도출한다. 5장 1절에서는 2012년부터...
[학술논문] 북한소설의 ‘과로’ 양상과 전쟁의 수사 -‘수령’과 긍정인물의 성격 형상을 중심으로-
...문학비평에서도 그 조짐이 발견된다. 특히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으로 대표되는 인민들의 극한적인 생존 경험과 새 것과 낡은 것의 투쟁이라는 역사 인식, 그리고 전형적 환경에 대한 논의 등은 정전 이후에도 서사가 요구하는 전쟁 상황의 연장과 과로로 형상화되는 희생성의 관 계가 어떤 구도 위에 놓이는지 보여 준다. 대표적인 수령형상문학 계열 소설인 「큰 심장」에서 수령의 과로는 종종 직접 서술로 제시되어 모호함과 오해를 최소화하며 대부분 타인들의 흠모의 정서로부터 포착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수령은 과로에도 뚜렷한 지향을 지닌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과도하지만 실수나 낭비가 없다. 수령의 목적은 단지 문 제 해결이 아니라 인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양하는 것이다. 수령형상문학 계열의...
[학술논문] 해방 직후 朝鮮人民共和國의 國 문제- 대중 활동과 國 의지를 중심으로 -
해방 직후 朝鮮人民共和國은 國으로서의 대중 활동을 강화하였다. 실제로 朝鮮人民共和國에 의해 발표된 조선 내 일본인 재산에 대한 규정, 3․7제 소작료를 기본으로 한 토지 시정 방침, 그리고 10월 중순 이후 계속된 이들의 경제 정책, 생활 대책 등은 모두 국가 수준의 정책 발표들로서, 당시 대중들의 관심에 정확히 부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편, 이때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전국청년단체총동맹, 전국부녀총동맹, 조선문학가동맹 등 많은 조직들도 朝鮮人民共和國 지지를 공식화하였는데, 이러한 대중적 움직임은 미군정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본고는 지방 차원에서 朝鮮人民共和國의 國 사수 의지가 지방 인민위원회의 실제적 國 관념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朝鮮人民共和國의 國이 그만큼 대중적으로...
[학술논문] 박문원(朴文遠, 1920~1973)의 미술비평과 미술사 서술
...「조선미술의 당면과제」(1945)에서 「미륵사 전설에 대하여」(1967)에 이르기까지 박문원의 텍스트를 일별해보면 무엇보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대한 각별한 애정, 그리고 작가 주체의 능동적 역할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그는 처음부터 레닌을 따라 사회주의리얼리즘을 ‘객관적 세계를 본질적인 면에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와 ‘인민의 나아갈 바를 가리키며 고무추동하는 실천적 태도’의 변증법적 통일로 이해했고 그러한 변증법적 통일의 주체로 작가를 내세우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이에 따라 현실의 기계적 재현을 지향하는 인상주의 내지는 자연주의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강조하면서 작가 주체를 도식의 틀 속에 가두는 당대 소비에트 미술의 경향성 또한 그의 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학술논문] 내재적 발전론의 네트워크, ‘민족적 책임’의 경계 가지무라 히데키와 그의 시대, 1955-1989
이 논문은 내재적 발전론의 형성과 전개를 동아시아 진보진영의 네트워크(1955-1989)에서 고찰한다. 내재적 발전론은 1960-70년대에 형성되었지만, 1980년대에도 한국사 인식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활용되었다. 가지무라 히데키는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이다. 그는 1960년대에 북한의 역사학을 일본에 소개하였고,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관여하였으며,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한일회담을 일본의 식민지 재침략 시도로 규정한 그는 일본인으로서 ‘민족적 책임론’을 일관되게 제기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한국과 일본의 지적 기반은 다르고 연구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였다. 가지무라의 역사학이 한국에 적극 수용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그 현실 분석력이 의심을 받고...
[학술논문] 정치적 연출과 기억의 재구성 맹세와 기념을 중심으로
...맹세에서 나타난다. 회고록에서 보이는 맹세에는 김일성 자신의 맹세와 아버지의 맹세만 보증인이 없으며, 시라는 장치를 동원하여 연출을 하고 있다. 시나 노래는 다가가는 방식과 효과를통해 표상과 지향을 공감하게 함으로써 맹세의 장면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연출적장치의 하나인 것이다. 기념에 있어 혁명열사릉은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기억이 인민들의 경험기억을 망각한 김일성 중심과 그의 측근 중심의 기억으로 재구성하여 연출함으로써 권력 주체인 그의 입지와정체성을 공고하게 하는 데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인민의 기억이 배재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전통은 희석되어 버렸다. 물론 북한이 회상기를 통해 인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정치ㆍ문화적 산물로서 사회적 기억에서 배재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