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위해 3개 축선으로 남진을 전개했다.
p.86
미국은 즉시 일본에 주둔한 지상·해·공군 부대의 한국 파병을 결정하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이와 함께 16개국이 전투 부대를, 5개국이 의료 및 후방 지원 부대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미국과 유엔의 신속한 대응은 패전 직전의 대한민국을 기사회생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p.110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월 전쟁 발발 직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는 38선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들 사건은 단발적·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지령과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된 전면 남침 준비 과정이었다...
[경제/과학]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된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지역에 대한 학습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무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은 미국의 원조와 국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과 수출장려정책 등을 통해 빠르게 경제를 복구해 갔다. 1970년경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로 성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 시도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 등은 한국을 비롯한 후발 개발도상국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대해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1990년대 초반 경제개방정책을 취한 중국은 빠르게 성장을 이어가 20년...
[통일/남북관계]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된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지역에 대한 학습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무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은 미국의 원조와 국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과 수출장려정책 등을 통해 빠르게 경제를 복구해 갔다. 1970년경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로 성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 시도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 등은 한국을 비롯한 후발 개발도상국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대해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1990년대 초반 경제개방정책을 취한 중국은 빠르게 성장을 이어가 20년...
[정치/군사]
“죽음은 두렵지는않았다. 오직 패전이 두려웠다”
전쟁과 군과 그리고 백선엽,
한국 역사에 있어서, 6.25전쟁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한국전쟁 당시 최일선 야전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치룬 백선엽장군이 오늘의 젊은 지정에게 바치는 생생한 전쟁 메시지
[경제/과학]
...중심축이 된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지역에 대한 학습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무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직후 일본의 경제상황은 폐허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국의 원조와 국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 및 수출장려정책 등을 통해 빠르게 경제를 복구해 갔으며, 1945년 패전으로부터 약 25년 후인 1970년경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로 성장하였다. 1990년대 초반 경제개방정책을 취한 중국은 빠르게 성장을 이어가 20년 후인 2010년 GDP 기준 경제규모에 있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국가로 성장하였다. 중국은 2018년 기준 한국의 교역상대 1위국이며 한국 전체 무역량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학술논문] 태평양전쟁 직후 한일소설에 나타난 패전 일본 여성의 성격 비교 연구 -황순원의 「술 이야기」와 다자이오사무의 「斜陽」을 중심으로-
This study examined how Japanese women were described in Korean and Japanese novels just after the defeat of Japan in the Pacific War, and what meanings the writers gave to the women. In Hwang Sun‐won’s Sul Iyagi (A Wine Story), Korean men’s eye to Japanese women left in Korea (North Korea) after the defeat of Japan is multi‐layered. In the story, the Japanese woman is described as an old
[학술논문]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귀환의 양상 고찰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감격이 앞서게 된다. 덧붙여 해방 후 패전국 국민으로서 만주 등지에서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가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비참한 모습도 이주와 귀환의 측면에서 해방정국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38선을 경계로 이남과 이북에서 잔류 일본인에 대한 태도는 판이했는데, 북한 거주 일본인들은 소련군에게서 생명의 위협과 약탈, 강간의 피해자가 되어 통행이 금지된 38선을 넘고자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야만 했다. 따라서 소설 속에 패전국 일본인의 비참한모습은 주로 북한 땅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는 조선인들의 귀환의 양상뿐 아니라 패전한 나라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로돌아가기 위한 과정, 길 위에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 또한 당시 귀환의 양상에서 짚어봐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학술논문] 귀화의 에스닉 정치와 알리바이로서의 미국 -‘해방’ 이후 장혁주의 선택과 「아, 조선(嗚呼朝鮮)」(1952)-
이 글은 �아, 조선�(1952)을 비롯하여 ‘해방’ 이후 조선 및 재일조선인에 관해 쓰인 장혁주의 몇몇 일본어 텍스트를 냉전 아시아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해방’ 이후 장혁주의 일본어 창작이나 일본귀화의 문제는 ‘조선/한국적의 포기와 ‘일본’ 적의 획득이라는 내셔널한이항 대립 속에서 조명되어왔다. 그러나 구 식민지들인들의 전후 처리 문제가 놓여 있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점령당국이라는 제3항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점령기 일본의통치 권력은 실제로 연합국 최고 사령관과 일본 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이결합함으로써 미일합작구조를 이루었고, 이 복수의 권력은 서로 책임을전가하는 구조적
[학술논문] 사할린 한인 귀환을 둘러싼 배제와 포섭의 정치 - 해방 후∼1970년대 중반까지의 사할린 한인 귀환 움직임을 중심으로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그들은 사할린에 버려졌다. 사할린을 점령한 소련은 처음에는 사할린 한인을 북한으로 귀환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귀환으로 부족해진 노동력 때문에 소련 당국은 사할린 한인에게 시민권과 국적을 부여하는 정주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북한 또한 소련과의 정책적 연계 속에서 소련의 사할린 한인의 정주정책에 동조했다.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북한 노동자를 새롭게 사할린에 파견하거나, 기주 사할린 한인들에게 북한국적을 부여해 사할린에 정주하도록 했다. 소련과 북한은 사할린 한인을 노동력으로 공유하면서 ‘국민’으로 포섭하여, 미국과 일본 한국과의 이데올로기 전쟁 속에서 체제 우위를 점유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패전 후 일본은 새로운 국가를...
[학술논문] 자본, 기술, 생명 -흥남-미나마타[水俣] 또는 기업도시의 해방 전후-
...찾아볼 수 있듯이 이곳에서의 삶은 공장=요새에 의해 규정된다. 공장=요새는 내부를 철저하게 위생적인 생산현장으로 보존하면서 이 위생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부단히 바깥으로 추방․배출함으로써 유지된다. 한편 해방 후 흥남의 이 공장=요새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적에 의해 장악되는데, 이를 통해 오히려 북한 사회 전체가 공장=요새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해방된 민족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서사에서 말소된 죽음은, 패전 후 일본의 미나마타 공장에서 떠오른다. 이 논문은 흥남-미나마타의 장소성을 실마리 삼아 식민지/제국 시기와 국민-국가 시기의 조선(한국)과 일본을 초-경계적(trans-border)으로 횡단하며 식민지/제국 체제의 착취 장치와 그 유산을 고찰하고자 하는 보다 광범위한 기획의 일부분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