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직접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며 체감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남북이산가족기념관’ 건립과 파주 동화경모공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분단의 상처 치유와 평화·화해의 가치를 확산하려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념관이 지향해야할 세가지 핵심 가치인 가족애, 이념 극복, 홍익인간 정신을 논의의 기본 프레임으로 하여 왜 기념관이 필요한가, 그리고 기념관의 운영 방침을 뒷받침할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이산가족의 아픔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민족적 비극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현대사의 중요한 교훈으로서 후대에 전승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치/군사]
해방의 격랑 속에서 갈라진 한반도의 운명
20세기는 공산주의와 함께 막을 올렸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조선에서도 큰 울림을 남겼다. 평등한 세상, 모두가 잘사는 사회라는 공산주의의 약속은 억압받던 이들에게 달콤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박헌영과 김단야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고, 여운형과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들까지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꿈꿨던 이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의 공산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워버리고, 일당 독재와 억압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민족 저항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지리/관광]
...않을까.
--- p.196~197
서울 종로구에는 해방 정국에서 새로운 건국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현실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현장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당시의 건물이 복원을 통해 남아 있기도 하고 소유주의 개발로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역사적 자취는 표석으로라도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김구 주석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해 거처로 삼았던 경교장, 해방 정국에서 정당 활동과 교육 활동의 발원지로 활용된 서북학회회관 터,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 터 그리고 몽양의 집터를 한나절 코스로 거닐 수 있다. 해방 정국의 건국운동 현장을 답사하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당시의 건국운동이 성공했다면...
[사회/문화]
1945년 해방부터 2020년대 팬데믹까지,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소설로 엮어내다
▶ 역사와 부산을 서사화하는 소설가
조갑상의 다섯 번째 단편집 『도항』
역사와 부산을 서사화하는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조갑상이 8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자 다섯 번째 소설집인 『도항』을 출간했다. 조갑상 소설가는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거대한 역사의 파도에 처한 개인들의 삶과 그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존재들을 뚜렷한 문장으로 복원해왔다. 이번 소설집 『도항』에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한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1945년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다룬 「도항」, 1972년 유신헌법...
[통일/남북관계]
...작용 양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비교·서술하기 위해 구성했다. 1부에서는 냉전 시기 남북 언어정책의 전사를 서술하였다. 2부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북이 일제강점기 민족어운동의 성과를 이어받으며, 각자의 체제와 이념으로 어떻게 국어 재건 계획을 구체화하였는지 서술하였다. 3부에서는 휴전을 전후한 1950년대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이다. 남북의 권력자가 권력 기반을 구축하면서 국가의 책임과 역할로 언어정책이 변화하는 양상을 서술하였다. 4부에서는 한글전용정책과 문화어수립정책을 중심으로 남북 언어정책의 전개 과정을 서술하여, 언어정책이 분단체제를 강화하는데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서술하였다. 5부에서는 남한의 ‘국어순화’, 북한의 ‘말다듬기’...
[학술논문]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과 러시아에서 본 광복의 의의 및 평가
... 8.15 해방은 일본의 항복 결과이며,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와 장기전으로 인한 일본 국력의 약화, 소련군의 참전이라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한국의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뒤이은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해방자’로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소련군에 의한 8.15 해방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시기별로 논조의 차이는 있다하더라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근본 논법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는 주체의 입장을 강조하는 현 북한의 주장과도 상이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해방에 대한 러시아측의 과도한 서술을 교정하고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이를 재해석함으로써 양국이 공히 인정할 만한 ‘한국의 해방’에...
[학술논문] 김일출의 학술활동과 역사연구
...하였다. 사학과 동료 교수였던 김성칠은 그를 학문 연구와 학생지도에 열성이었다 하였고, 사학과 졸업생으로 미국학의 대가인 이보형은 자신이 미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김일출의 조언에 의한 것이라 술회하였다. 김일출은 1950년 9월 무렵 북한으로 가서 민족 문화 건설과 사회주의의 결합에 주력한다. 일제시대와 해방시기를 살다간 김일출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어느 한쪽에도 경도되지 않은 균형있는 입장에서 민족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지향하였고 민족 문화 건설에 매진하였다. 하지만 분단 이후 경직되어가는 남북 두 체제하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지식인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를 통해 미소 냉전체제와 그에 따른 정세 변화라는 조건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고뇌하며 성찰하는 지식인의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학술논문] 분단'과 '분단'을 잇다 : 미군정기 오키나와의 국제연대운동과 한반도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통해서 전개되었던 오키나와와 북한 간의 국제연대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남북한은 안보전략상 미군정기 오키나와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 한국은 미군의 오키나와 통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APACL 등을 통해 오키나와에 친미반일반공 독립국 형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일협정으로 일본 중심의 아시아 안보체계에 편입된 후에는 오키나와 반환 교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미군기지의 안정적 운용 확보에 기여한다. 한편 북한은 AAPSC 등 세계적으로 고양되었던 제3세계해방운동 속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의 조국복귀운동과 연대했다. 한반도와 오키나와 문제는 외국군의 간섭에 의한 분단에 기인하며 민족 통일이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목표로 상정되었다. 하지만, 제3세계 해방운동과의 연대를...
[학술논문] 단정기, ‘스파이 정치’와 반공주의 - 학살의 전사
...영향, 동시에 그것이 사회를 드러내는 국면을 구조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국가 안전과 치안, 자유와 해방, 이념 수호 등의 명분이 ‘국민 도덕’과 결합했을 때 극악한 정치폭력이 양산되고 확산된다. 학살은 그 결과물이다. 그런데 기존 연구는 모두 스파이물을 너무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 분단은 이동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분단 상황에서 이북의 정황과 정보의 남한 유입은 기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해당 정보가 국민에게 제공된다면 그것은 독자 입장에서는 ‘스파이물’화된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단정기에 해외에서 들어온 스파이번역물뿐만 아니라 월남인의 기록, 단정 후 기록된 해방기의 방문 및 기행 등도 사실상의 ‘스파이물’로서 연구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
[학술논문] 남북통일정책의 특성 비교: 해방이후 이승만, 김일성의 '자주와 국가'를 중심으로
...남북한은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남북한 통일정책은 냉전과 탈냉전의 국제정세와 남북한 ‘힘(국력)’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남북한은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반하여 체제 대결과 체제 경쟁을 했다. 특히, 국가건설형성자였던 이승만과 김일성은 ‘북진통일론’과 ‘민주기지론’에 의해 민족해방 또는 인민해방을 시킨다면서 상호 적대․대결․배제하면서 무력통일을 시도하였다. 남북통일은 ‘힘(국력)’에 기반한다. 남북이 통일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발전과 상대적인 우월성을 갖추어야 한다. 통일을 위한 국가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는 절대적인 추진체다. 해방이후 이승만과 김일성은 모두 민족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