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정은 "우크라이나괴뢰 방치하면 서울의 군대도 무모함 따라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파병한 데 대해 정당성을 주장했다.
1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지난 9일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주북한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연설 전문을 보도했다.
[뉴스] "北, 러 파병 전사자 유족에게 '평양 이주권' 부여 검토"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북한군 유족들에게 평양 거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6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한국의 한 연구소의 보도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해 불만이 나오자 북한 지도부가 전사자 유족들에게 ‘평양 이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평양에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에 러시아에서 사망한 전사자들의 유족을 거주시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들은 평양 중심부가 아닌 외곽 지역에 거주지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뉴스] 밴스 美부통령 “내 생애 미국이 전쟁 이긴 적 없어… 군 운영 방식 바꿔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내가 사는 동안 미국은 한 번도 전쟁에서 이긴 적 없다”면서 “무기 조달 및 군대의 무장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한다고 밝혔다.
[뉴스] 극빈국 북한이 건조하는 이지스함...신형 전투함 등장의 의미는?
... 전쟁이라는 행위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나쁜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개인 또는 집단의 욕심 때문에 전쟁은 끝없이 반복돼 왔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반복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서양에서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이 있고, 동양에서는 “천하가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天下雖安 忘戰必危)”라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로운 시기에도 강한 군대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의무로 받아들여졌고, 전쟁에 잘 대비한 나라만이 전쟁의 화마를...
[뉴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한 5가지 핵심 질문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다는 소식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부 사람들, 외부에서 이번 전쟁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1000km에 달하는 전선을 따라 여러 곳에 군대를 배치한 상황에서 왜 이토록 대담한 공격을 감행한 것일까.
[정치/군사]
김정은이 집권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무 력을 완성하였고,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전력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과 무기를 제공하고, 군대를 파병하여 큰 우려와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국가’로, ‘제1의 적대국가’로 지칭하며 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유사시 대한 민국의 평정을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한반도의 안보가 엄중한 시기에 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는 21 세기 김정은이 지휘하는 북한군의 실체와 위협에 대한 『북한군사론』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하여, 제1부에서는 북한의 정 치와 군의 관계 및 군사사상을 전제하고, 제2부에서는 북한군의...
[정치/군사]
...조선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종주권을 박탈하여 마음껏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러일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고 마침내 조선을 병합하는 단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이 당시 세계정세는 어떻게 흐르고 있었는가. 러시아는 1856년 영국과의 크림전쟁에서 패배하여 지중해 진출이 봉쇄되었고, 영국이 1880년 아프카니스탄을 점령하자 인도양 진출도 막히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남은 지역인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며 한반도에서 일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을미사변(민비시해) 등 변란이 있을 때마다 청나라에 군대 파병을 요청하는가 하면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법/인권]
1. 6.25 전쟁과 정전 협정 이후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 등 적대 세력에 의해 자행된 전쟁 범죄(민간인 학살, 납치, 포로억류)와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2. 주요 전쟁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과 기사자료를 제시하고 출처를 명시하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자 했다.
3. “육전에서 군대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제네바 협약”과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을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4. 한글판과 영문판 합본으로 앞에서부터는 한글로, 뒤에서부터는...
[정치/군사]
...노동당·조선인민군·내각 등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그 가운데 인민무력부장, 총리, 대남비서를 선정했다. 이유는 다른 직책에 비해 남북한의 문헌 자료가 풍부한 편이고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자리들이다. 이들은 김 씨 3부자에 의해 선발돼 그들에게 충성하고 오늘의 북한을 만드는 데 비중 있는 역할을 했다.
인민무력부장은 북한 군대를 대표하고 총리는 북한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대남비서는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들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통해 김 씨 3부자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김 씨 3부자에만 집중하다보니 북한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지 못했다. 북한 연구 분야도 범위가 좁아 미국·일본·유럽...
[사회/문화]
...박길용 전 북한 외무성 부상(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정치학 박사)과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정치국장 겸 제1부상 등은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1945년 8월부터 1954년 초까지 북한에 파견된 고려인은 500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15쪽)
그들은 모두 입북 전 소련군으로부터 ‘북조선에 들어가 붉은 군대의 건국사업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북한에 파견되기 이전에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고, 김일성을 북조선의 지도자로 추대하라는 미션을 받은 것은 입북 시기에 따라 달랐다. 1945년 말까지 파견된 사람들은 북한에 파견된 이후 미션을 받았고, 1946년 이후 파견된 사람들은...
[학술논문]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 -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논박을 중심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성 착취와 관련하여 본 논문이 제시하는 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의 군대가 아시아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적으로 유린한 것은 본질적으로 성노예 착취로 간주될 수 있다. 둘째, 이 성노예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세계 평화, 인간존엄성, 남북한의 대립 해소, 국제적 연대 등을 지향함으로써 전 인류를 위하는 목적을 실현시키는 것과 연계될 수 있다. 본 논문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담긴 주장과 대립․논쟁하면서 일본군에 의한 성 착취의 노예적 본질을 해명하고자 시도해볼 것이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라 불린 여성들에 대한 성적 유린은 성노예 억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여성들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 즉 성적 욕구를...
[학술논문] [연구노트]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난민에 대한 중국정부의 정책
1950년 6월 25일, 민족상잔인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과거 이 전쟁에 대해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며 학계에서 논쟁이 분분했지만 냉전 후 러시아당안이 해제되면서 결국 남침으로 결론이 났다. 김일성은 전쟁에 대한 스탈린의 지지를 얻었고 모택동의 동의도 받아 낸 것이다. 모택동이 지지한 원인은 냉전시기 같은 사회주의진영 속에서 서로 지지해야 한다는 대의도 있었지만 동북전쟁시기 중공은 북한정부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공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북한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북한난민을 중국경내에 대량으로 받아들여 안치하고 부양했다. 당시 중국도 국내전쟁이 금방 끝난 상황에서 국내경제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북한난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중국경지역에...
[학술논문] 오키나와의 아리랑 - 미군정기 오키나와의 잔류 조선인들과 남북한
...때문이다. 총련은 오키나와에 오자마자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 조사는 군대의 논리에 의한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화에 대항해서 전개된 오키나와 주민 주체의 전투 기록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주민의 논리’에 입각한 오키나와 전투 역사화 과정에서 조선인들을 발견했다. 총련은 이 성과들을 이어 받으면서도 조선인이 주체가 된 오키나와 전투의 실상을 그리려 했다. 그 결과 조사단은 오키나와 전투 준비를 위해 동원되었던 조선인들 중에패전 이후 미군의 전쟁준비에 동원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조선인들에대한 일제와 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함으로써 오키나와에는 식민지주의가 지속되고있었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한국정부와 총련의 잔류 조선인에...
[학술논문] 북한의 사이버공격에 대한 국가총력적 대응체계를 위한 법제방향
...통합하려는 군사도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도발의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북한은 우리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공격을 하여 좀비군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자유민주적 법치국가’ 대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입각한 전체주의’라는 제도적 비대칭성과 ‘정보화 강국 대 정보화 석기시대’라는 정보화 기반의 비대칭성을 악용한 북한의 대남 전략적 사이버공격에 대해 국가가 총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되, 사이버공격의 효과에 따른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전쟁 외 군사작전’으로서 사이버작전의 필요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37조제2항 및 제77조제1항의 비례원칙상 전시‧사변 또는 국가비상사태에...
[학술논문] 북한의 화선(火線)음악 - 6.25전쟁기를 중심으로 -
...6.25전쟁기간과 이 기간 전후에 진행된 북한음악의 양상을 파악하는 동시에 북한에서 말하는 화선음악(火線音樂)의 실체를 알아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북한의 체제 성립 초기부터 체제에 부합하면서도 인민성(人民性)에 기초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데 노력하였다. 특히 전쟁기인 1951년부터 1953년에 창작된 가요는 439곡, 합창곡 142곡으로 전체 악곡수의 절반을 넘는다. 이는 전쟁에 참여하는 인민군을 독려하는 동시에 연주의 기동성(機動性)과 빠른 보급 속도를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농어촌을 포함한 노동현장, 그리고 학교에 이르기까지 직맹(職孟) · 농맹(農孟) · 여맹(女孟) 등 다양한 조직체계를 기반으로 광범위하게 보급되었으며, 군대에서도 군대 내 음악써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