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오래된 스위스식 형태의 중립국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록 중립의 내용과 성격은 다양했으나, 1950년대 후반 중립의 물결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남한 정부는 1950년대 출현한 탈식민 평화와 중립의 물결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평화와 중립은 공산 세력을 이롭게 하는 자유 진영에 대한 평화공세이자 중립공세일 뿐이었다. 반면 북한은 평화와 민족해방운동의 시각에서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비동맹에 대해 상반된 인식과 대응을 보인 남북한이지만, 평화와 중립의 효과를 평가할 때는 ‘대칭적 유사성’을 보였다. 평화와 중립이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따졌다. 반둥회의와 오스트리아 중립화 독립은 자본주의 진영에서,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가 표방한 중립외교는...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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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전 이 원고를 믿을 만한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정말 이 정도였냐”라며 놀라더라고요. 북한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마저 그렇게 반응하는데, 외부의 사람들은 얼마나 더 모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원고를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요.
-작가 인터뷰
북한 문제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함께 해 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인권 개선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민족으로서 서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그런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작가 인터뷰
[사회/문화]
...‘조선’과 ‘대한’의 두 가지 만세
한편 미소공동위원회는 1946년 4월에 조선 내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할 항목을 발표한 바 있었다. 1947년까지 이 항목에 대한 답신을 받았었는데, 여기에 국호와 국체(國體) 문제도 들어 있었다.
국호에 한정하여 답신을 살펴보면, 우파인 임정수립대책위원회는 ‘대한민국’, 좌파인 민족주의민족전선은 ‘조선인민공화국’, 중도파인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공화국’, 미군정의 입법기관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 제시했었다.
여기서 보듯 국체는 모두 ‘공화국’을 지향하고 있었다...
[통일/남북관계]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기시한 적대적 대북인식의 산물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로도 남북은 무력통일의 의지를 거두지 않았고, 상대를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상상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물리적 단절과 이념적 대립 속에서도 협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8년 7ㆍ7 선언을 계기로 ‘민족공동체적 시각’이라는 새로운 틀이 등장하며 남북경협의 제도화를 견인했다. 이후 교역과 투자, 관광, 특구사업으로 이어진 남북경협은 협력의 지평을 넓혀왔지만, 정치적 이해와 군사적 긴장의 파고 속에서 번번이 확대와 위축, 재개와 중단의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이 책은 적대의 시대를 지나 협력의 물꼬가 트인 이후 정권마다 각기...
[사회/문화]
...겪는 고통을 배경으로, 저자는 직접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며 체감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남북이산가족기념관’ 건립과 파주 동화경모공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분단의 상처 치유와 평화·화해의 가치를 확산하려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념관이 지향해야할 세가지 핵심 가치인 가족애, 이념 극복, 홍익인간 정신을 논의의 기본 프레임으로 하여 왜 기념관이 필요한가, 그리고 기념관의 운영 방침을 뒷받침할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이산가족의 아픔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민족적 비극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현대사의 중요한 교훈으로서 후대에...
[학술논문]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의 한국 자본주의론 내재적 발전론으로서의 '종속 발전'론
...전망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는 사회 성격을 놓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가지무라는 전자를 비판하고 후자를 옹호했다.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종속'의 문제를 고민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가지무라의 문제의식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가지무라는 1970년대 한국의 '민족경제론'의 문제의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민족경제'='민중경제'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이념으로서의 민족경제' 또한 도출해내고자 했다. 가지무라 히데키의 '민중적 민족주의'도 이와 같은 <이념=실체>로서의 민족경제와 깊게 연관된 것이었다.
[학술논문] 문 익환의 통일운동과 통일인식: 민중과 민족 사랑으로
문 익환의 통일론과 통일운동이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라는 큰 틀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본 연구를 통해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북간도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체득하였고, 민족문제와 기독교 신앙을 동일시했던 아버지 문 재린은 훗날 그의 통일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문 익환과 많은 교류를 하였던 윤 동주, 장 준하, 안 병무 등은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문 익환은 스승 김 재준으로부터‘화해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남북의 동포가 화해해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3.1민주구국선언문의 기초로 인해 옥고를 치른 후, 1978년에‘민주통일 병행’을 주장하였고, 1978년 10월부터 1979년...
[학술논문] 김정은 체제의 치안통제와 인권문제: 현황과 대응
..., ④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대내적 역량강화 등이 요구된다. 요컨대 북한인권의 개선 없이는 바람직한 민족공동체 형성도, 미래지향적 평화통일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국민은 튼튼한 안보의 바탕 위에서 장ㆍ중ㆍ단기 종합적인 북한의 주민통제와 인권문제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학술논문] 아리랑 유산의 세계화와 스토리텔링
...향수소스(역사적 아리랑자원 활용)를 통해 이야기 가공과 세계인의 감성 자극 문제를 지속적으로 진단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아리랑의 세계화 센터 설립을 거듭 제안한다. 한류에 부합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문적으로 한류의 성과를 비판하고 아리랑의 감성적 확산을 정립하면서 통섭의 세계화를 되짚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아리랑 유산을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해서 반대 급부로 감정적 대응으로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아리랑 유산의 매력에 적절한 이야기의 감성DNA 찾기가 시의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리랑 유산의 진정성은 OSMU(One source multi use)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김구의 민족적 문화주의 실현론이 가능하다. 아리랑 스토리텔링의 창조적 진행형은 한류의 또다른...
[학술논문] 北方政策에 나타난 北方領土問題
... 힘썼기 때문에 북방정책 속에 내포된 북방영토문제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은 소련과의 수교교섭에 30억 달러라는 너무 비싼 대가를 제공하였으며, 재소한인문제 처리와 간도 및 연해주 영유권 문제, 중국조선족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었다. 그 결과 북방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민족정체성을 상실할 위기상황에 처하였다. 따라서 북방영토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땅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생존권 역으로서의 중요하다. 간도의 만주지역과 연해주, 한반도로 연결되는 한민족공동체의 형성을 예상하여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북방정책을 추진했어야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