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45~1948년 북한 소비조합 정책의 전개
After the liberation, the North Korean society was facing full-scale changes. The Socialists were starting to create a new order, based upon the North Korean Labor Party and the newly established People’s Committees. Changes, which the Joseon people had never before experienced, started to affect the North Korean people’s lives at the most minute levels, not only in Pyeong’yang but
[학술논문] 장시우의 재만사회주의운동과 북한 상업정책의 특징
...1928년부터 화요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앙에 진출했다. 1928년 말엽부터 급격히 좌경화된 국제 사회주의 정세에 반응해 급진적인 계급운동과 농민들의 항일시위를 지도했다. 나아가 재만한인사회주의자들의 중국공산당 합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급진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장시우는 급진적인 계급노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의 수립을 주장하여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무장세력과 결합했다. 1946년부터 북한에서 진행된 상업정책과 소비조합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투기 활동을 통제하여 생산자(농민)와 소비자(노동자) 간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를 통해 만주 지역에서 급진적인 농촌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한 장시우가 북한의 상업 부문을 오랫동안 담당한 맥락이 이해된다.
[학술논문] 1950년대 북한의 사회주의 상업과 ‘옥심상점’
...개인상공업자 간의 경쟁 과정이었다. 해방 이후-전쟁 시기 북한정부는 개인상공업자들을 압박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기도 했으나, 빈약한 국가상업망의보조적 역할을 개인상인들에게 부여하면서 공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정부는 전후복구의 성과를 확인한 이후 개인상인들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높여 양곡부문을 장악해 나가면서 개인상인들의 자본유입을 차단하고 그 자리를 국영상점과 소비조합으로 대체하려했다. 1955년 이후 농업협동화의 성과로 인민의 구매력 점차 상승하자 상품공급에 대한 여건 개선이 요구되었다. 정부는 ‘사회주의 상업’을 실시함에 있어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재생산에 초점을 두고 상품폰드와 구매폰드의 균형적 교환을 구조화시키고자 했다. 또한 구매폰드의 비조직시장 유입은 곧 계획경제의 차질로 이어졌기 때문에...
[학술논문] 정전 후 북한의 사회주의 개조와 민간 상업의 몰락
...기조는 협동조합 체제로의 수용보다는 억제와 구축에 있었다. 이를 위해 1953년 1월에는 최대 74%의 누진세율을 적용한 소득세법이 개정되었다. 1954년 11월부터는 양곡의 개인 거래가 금지되었다. 이러한 조치에 의해 민간 상업은 크게 위축되어, 이후 민간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격렬한 계급투쟁 없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1956년 말부터 북한 정부는 민간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여, 1958년 8월에 완수를 선언하였다. 이 시기 민간 상인들은 소비조합이나 생산협동조합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개조’된 것이 아니다. 고율의 소득세와 상품 공급처 및 판로의 차단을 통해 많은 민간 상인은 그 경제적 기반을 박탈당하고 몰락하였다.
[학술논문] 구동독 소비조합(Konsumgenossenschaft) 소유권과 법률의 적용
사회주의국가들의 소유권은 국가, 사회협동단체 그리고 개인이 그 주체로 된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주의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북한도 예외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구동독 체제 당시의 사회협동조합의 한 종류였던 소비조합은 북한의 여러 다양한 사회협동단체(조합)들과 그 법적 성격이 같을 것이다. 통일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갑작스러운 체제변환이라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그 토지소유권의 귀속 과정도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에 따라 본문에서 살폈던 드레스덴 소비조합 사례를 고찰하였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구동독 사회의 기존 규범체계가 서독 체계 규범으로 이양되어 그 변환기 동안 한시적인 법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구동독지역에서의 구동독 법률과 한시법 사이에서도 그 적용과 해석에 혼란이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