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앞에서 새빠지게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리열은 정신이 얼떨떨했다. 짙어 가는 어둠이 종잡을 수 없는 불안과 모순의 깊은 미궁 속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뒷일은 말할 나위 없이 뻔하게 번져졌다. 연약한 김영숙이 칼도마에 올라 울고 까무러치며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밤새 잣 20톤이 모두 도륙당하는 것으로 문제는 속결되고 말았다. 새벽 4시가 훨씬 지나 꼬리 긴 화물차가 무겁게 움직였다. 마을의 개들이 저마끔 짖어대며 수탈자들을 지탄했다.
-p.113
사변적인 불의의 기습에 반 정신이 나갔던 노동자들이 차츰 반발하기 시작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제 아니 정치적으로 암둔하고 짓밟히는 것을 숙명으로 감수하고 살아오는 뿔...
[사회/문화]
...갈팡질팡 좌충우돌하는 소년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년의 가족들이 고향에서 쫓겨나는 마지막 장면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이 땅에 불어닥친 농촌(고향) 탈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예서 기다려라. 한 마디 던져놓고, 보따리 하나를 둘러멘 아버지가 비상도로 끝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네 식구는 그때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송홧가루 같은 팥고물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쑥대도 익모초도 쇠어가는 외딴 집터 앞
산모퉁이를 돌아간 비상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뿐인 보따리에 나누어 묶인 채로
우리는 버려지고 있었다 망아지처럼
눈물도...
[사회/문화]
...우정의 거리’가 조성되고, 그가 생전에 산책하고 사색하던 여의도 한강변에는 서울시 명예도로인 ‘구상시인길’이 열렸다.
구상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제의 폭압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그리고 4·19와 5·16, 이후 경제개발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2000년대 문화 융성기를 살다 갔다.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다 간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 기간에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 중에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시가 유독 많다. 한반도에 다시금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지금, 그의 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군사]
1991년의 남북한 UN 동시가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친 우리 외교의 비원을 해소하였을 뿐 아니라, 남북한 관계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또한 이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는 국제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여 소련과 중국의 외교적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이루어낸 대한민국 외교의 쾌거였다. 따라서 남북한 UN 동시가입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요인과 그 외교적 성과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선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 열강을 상대로 이뤄진 구체적인 외교교섭의 경위와 함께 북방정책과 남북관계의 거시적 로드맵 속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요 정책결정자와 외무당국자들을 초청하여 각각 2시간 내외에 걸쳐 심도 있는 질의와 응답을 진행하고
[학술논문] 북한 ‘수령형상문학’의 역사적 변모양상 1960~1990년대 북한 서정시를 중심으로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통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과제에 매진하지 못하고 권력승계 문제에 집중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남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를 지향하면서 상호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체제유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둘째, 주체문학 시기의 북한 시에서 ‘시적 대상’이 주로 ‘자연물화’ 하고 ‘시적 형상화의 방식’이 극도로 ‘단순화’하는 이유는 문학적 상상력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주체문학 시기의 북한문학사에서 당파성을 드러낸 시가 존재하지 않거나 유통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성의 ‘폐쇄성’과 ‘교조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학술논문] 허문섭, 『조선고전문학사』(1985)와이암 외, 『조선문학통사』(2010)의 거리
중국에서의 한국문학 연구는 국제 관계의 추이에 따라 몇 차례의 변화를 겪어 왔다. 첫 단계의 대표적 저술인 허문섭의 『조선고전문학사』(1985)는 출간 이후 많은 대학에서 주교재로 채택되면서 초창기 한국문학사 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하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한중 수교를 계기로 남한에서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남북한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자체 내의 축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적 상호 관계성을 추구하며 나름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이암 외, 『조선문학통사』(2010)는 현 단계에서 중국의 한국문학 연구 수준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두 문학사는 시기별로 서두에 일반적인 개황을 제시하고 대표 장르의 동향과
[학술논문] 한 조선족 여성의 가족사를 통해 본 디아스포라 경험과 생활사: 1932년생 박순옥의 삶을 중심으로
...구술생애사의 기록과 해석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주와 적응, 생활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전략이다. 본고에서는 두만강 접경지역 한 조선족 여성 노인의 삶을 세 딸의 도움을 받아 기억의 환기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조선족 디아스포라 경험과 생활사적 함의를 살펴보았다. 구술자의 본가와 시가 선조들은 일제 강점기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 연변의 용정과 도문 일대에 각각 정착했다. 그녀는 용정 석정촌에서 태어나 광석촌으로 이주 후 결혼해서는 조양천 시가에 살면서 광복 전후 시기의 삶을 경험했다. 1960년대 초에는 북한 이주와 탈북 귀향 후 돈화시로 이주하여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구술자의 가족사를 관통해서는 봉건 전통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중국 사회주의의 중첩된 역사적 맥락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선족사회도...
[학술논문] 내재율이라는 빈 기표, 그 이후 - 신지연, 『증상으로서의 내재율』, 소명출판, 2014
『증상으로서의 내재율』의 저자는 근대, 국가, 제도와 같은 역사 철학계에서 거대 담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개념사 연구와 달리, 한국의 근대자유시의 한 특성과 연관된 내재율이라는 작은 개념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현대 시가 형성되던 과정의 특수한 한 계기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구/동양, 보편/특수, 선발/후발이라는 이분 구도 속에서 내재율이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접근법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동양문화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근대 학문 연구의 보편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며, 한국의 근현대 자유시 형성 과정의 특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저자는 식민지시대부터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까지 내재율이라는 개념이 사용된 맥락을 섬세하게...
[학술논문] 해방기 북조선 시문학사의 재구성에 대한 연구
...재평가 받고 있다. 정문향의 서정시 「푸른 들로」도 여러 번 개작되었는데, 현재 김일성을 정점으로 한 북조선 중심의 역사로 재해석되고 있다. 또한 북조선 문예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최초의 조선문학사에 해당하는 1950년대 『조선 문학 통사(하)』(1959)에서도 냉전 체제의 압력에 의해 냉전 체제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방향으로 시편들이 개작되었다. 북조선의 대표시가 개작되듯, 북조선의 평론이나 그 연장선상의 북조선 문학사도 이렇게 재구성된 시를 중심으로 재해석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를 지배한다는 것은 미래를 지배하는 일이며,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은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이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현재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과거의 조정은 불가피한 것이기에 말이다. 이러하듯, 『조선 문학 통사(하)』(1959)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