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내려가는 열차표를 구하기 어려웠다. 전쟁이 끝나기는 했어도 사회생활 전반이 어수선하던 때라 열차표는 암표상들이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평양역은 당시 환경에서는 엄청 큰 건물이었다. 누가 찾아왔다기에 역사 밖으로 나가니 키가 훤칠한 여인이 손편지를 준다. 받아보니 중학교 동창이 부탁하는 소개로 우인희라고 적혀 있었다. 목수건으로 얼굴을 높이 가려 알아볼 수 없었다. 수건을 벗는다. 영화 〈춘향전〉의 우인희였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어도 첫인상이 어딘가 은근히 우아했고 느슨히 웃어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서울, 나는 전라남도 순천, 같은 남쪽 출신이라는 의미였는지 우리는 그렇게 점차 가까워졌다.
영화배우 성혜림은 1964년 5월로 기억된다. 그녀도 영화촬영소에 있는 중학교...
[사회/문화]
...기념하지만, 그 호명은 종종 개인의 일기와 상처, 생활의 곡절을 가린다. 이 책은 바로 그 ‘연출된 영웅’과 ‘지워진 인간’ 사이의 틈을 집요하게 비춘다. 저자는 장면과 개념을 병행한다. 공항의 꽃다발과 플래카드가 상징 자본으로 기능하는 과정을 보여준 뒤, 세대 간 기억 단절과 제도화된 기억의 작동—교과서, 추모 공간, 행사와 출판을 ‘기억의 정치학’으로 읽어낸다. 동시에 귀환자의 노년을 ‘역사적 외로움’으로 명명하며, 동지의 연쇄적 부재, 건강과 생계의 취약성, 자기검열이 남기는 침묵을 구체적인 생활 단서로 제시한다. 이 책의 미덕은 판결문과 연표가 말하지 못한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데 있다. 사건의 클라이맥스보다...
[정치/군사]
전쟁의 참상과 일화는 누가 기록하고 기억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현된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제 땅에서 강제로 쫓겨났던 소개민들, 포로수용소 주변에서 삶을 영위했던 이방인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전쟁포로들은 공식적 기록은 물론 기억에서도 소외되고 배제 되었던 사람들이다. 개인들의 전쟁 경험은 기억과 구술을 통해 기록되고 재현된다. 전쟁의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기억을 역사화하는 작업이다.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와 한산도 지역에는 기관의 성격과 수용 대상이 서로 달랐던 세 부류의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전쟁 포로들을 격리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그 땅에서 쫓겨났던 주민들을 위한 소개민 수용소,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
[지리/관광]
.../>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의 17번째 책.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 기획 및 출판한 〈기억과 장소-마음으로 돌아보는 평화 여행〉은 연구단의 HK연구인력 7명을 포함하여 단장 1명과 HK연구원 등 총 22명이 공동으로 집필에 참여한 대중서이다. 특히 이 책은 집필진들이 국내외 22개의 장소를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방법론에 따라 선별하고 직접 답사하여 기록한 답사기라는 점에서 학문적·실천적 의의를 갖는다. 집필진들은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정보들의 소개를 넘어 코리언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스며든 해당 장소들을 답사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치유적 효과에 주목한다. 식민, 이산, 분단과 전쟁, 국가폭력과 같은 한반도 근현대의 역사적 상처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비극적 상처와...
[정치/군사]
...동생이 학교에 다니고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등 구중국과는 확연히 달라진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국경 너머 조선이 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참혹하게 파괴된 모습을 보며, 그들은 다시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을 유린했던 기억은 미 제국주의가 일제와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거쳐 중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이야말로, 농민 출신 지원군들이 조선 인민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가 된다. 108-109
[학술논문] ‘전쟁의 기억’과 ‘기억의 전쟁’- 특별한 피난체험을 중심으로
...‘기억의 전쟁’은 그러므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전쟁과 관련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전쟁의 기억’은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의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이루지만 그런 스토리텔링들이 모여 ‘기억의 전쟁’을 형성하게 되고, 이 ‘기억의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기억’보다 더 굳건한 전쟁 담론을 구성하게 된다. 나아가 수십 년 전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던 실존 인물들마저도 ‘전쟁의 기억’이 아닌 ‘기억의 전쟁’으로 자신의 경험을 머릿속에 구조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당시의 경험은 현재의 입장이나 정세로부터 꾸준히 간섭받게 되고, 자신의 ‘전쟁 기억’은...
[학술논문]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피학살자유족회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기에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였다. 희생자들은 재판없이 처형당하였으며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처형당하였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그 주검을 수습하지도 못하였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이승만 독재의 한 부분으로서 민간인학살이 먼저 국회에서 쟁점화되었으며 이에 힘입어 경상남북도를 사례로 해서 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어 피학살자를 기억하는 유족운동을 전개하였지만 5·16 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서 탄압을 당하였다. 유족운동에 참가한 유족들은 유족회사건으로 혁명재판에 회부되었다. 혁명재판에서의 검사의 공소 사실, 재판부의 판결, 검사와 피고인의 상소 이유 등을 살펴보면 재판의 쟁점이 피학살자가 ‘국민’인가 ‘비국민’인가 하는...
[학술논문] 최근 한국과 스페인의 소설에 나타난 내전의 기억: 서사적 특징과 사회적 함의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과 스페인은 20세기 초중반 내전 성격의 전쟁을 겪은 공통적 경험이 있다. 이 연구는 내전을 겪은 지 60-70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재의 세대가 선조대의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1990년대 말부터 출판된 각국의 소설을 통해 살펴본다. 이를 위해서 이전 시기의 소설에 대해서도 비교 검토해 보았는데, 종전 후 양국 모두 철저한 반공주의가 지배함으로써 작가들은 자신이 겪은 바, 느낀 바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기를 거쳐야 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작가들은 이데올로기적 제약에서 벗어나 각자의 주관대로 전쟁을 서술할 수 있었다. 전쟁을 온전하게 체험한 1세대의 작가들에 비해, 전쟁 시기에 유아나 소년에 불과했던 2세대의 작가들은 전쟁에 대해 간접적이고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학술논문] 북한 전쟁영화의 기억법과 소구법: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남한 전쟁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본 북한 전쟁영화
...전쟁영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일반적인 전쟁영화들에서 논의될 수 있는 교양적이고 오락적인 측면들은 북한영화 연구에서는 쉽게 간과되거나 부차적으로 취급되곤 한다. 이 글은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남한 전쟁영화와 북한 전쟁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추출한 북한 전쟁영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입장에서는 패배의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북한이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패배의 기억을 승리의 기억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인민의 역사 기억과 각성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이 영화들은 인천이라는 잃어버린 공간과 풍경에 대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며 끊임없이 전쟁의 의미를 학습시키고 있다. 곧 전쟁의 비장미를 숭고미로 승화시켜, 전쟁을 비극이 아닌 영웅적 행위로 기억하고자...
[학술논문] 남북분단 70년과 북한선교의 방향성 모색
2015년은 해방과 분단 70년을, 2018년에는 남북한 정부수립 70년, 2020년에는 6·25전쟁 70년을, 2023년에는 휴전 70년을 맞게 된다. 향후 10년 내에는 미래 남북관계의 실제적 변화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개되리라 예상된다. ‘기쁘면서도 슬픈 날’로 기억될 수 있는 8·15 해방과 동시에 북한지역과 북한교회에 대한 지배의 주체가 일본식민지에서 이데올로기로 교체되었고,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평판마저 있었던 북한지역 지역은, 상당 기간, 찬송과 기도의 소리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들려오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종교와는 무관한 사회로 비춰지며 운영되던 북한사회도, 공인 기독교회가 1988년에 건립된 봉수교회를 시점으로 다시 등장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