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박길용 전 북한 외무성 부상(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정치학 박사)과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정치국장 겸 제1부상 등은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1945년 8월부터 1954년 초까지 북한에 파견된 고려인은 500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15쪽)
그들은 모두 입북 전 소련군으로부터 ‘북조선에 들어가 붉은 군대의 건국사업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북한에 파견되기 이전에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고, 김일성을 북조선의 지도자로 추대하라는 미션을 받은 것은 입북 시기에 따라 달랐다. 1945년 말까지 파견된 사람들은 북한에 파견된 이후 미션을 받았고, 1946년 이후 파견된 사람들은...
[사회/문화]
...네 차례에 걸쳐 꾸려냈고, 지도부가 구성되지 않았을 때도 일제에 저항하고 노동자, 농민을 조직화하며 당을 재건하기 위한 치열한 분투를 했다.
우리 근대사의 주요 순간들, 역사의 진보를 위해 싸우던 인물과 단체
《조선공산당 평전》에는 조선 말기부터 해방까지 이르는 우리 근대사 속에서 독립운동과 진보정당 운동,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오랜 기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인물과 단체 들이 대거 등장한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조선인들의 러시아 이주와 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진행한 학교 설립, 신문 발행, 군대 조직의 활동상들이 본격적인 조선공산당 창당에 앞서 비중 있게 소개된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에 비해 잘 알려져...
[사회/문화]
...귀족’의 노골적인 이권 챙기기의 사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뇌물 할당량 챙기기에 지쳐 자살한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의 사례를 추적하며, 버스·전기·수도·학교비품·공장·군대빼기 등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뇌물 거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독재체제의 정체’는 조선노동당 중앙당사 3층 서기실의 엘리트들과 김정은의 공생 관계, 미·북 정상회담 당시 실무협상을 주도했던 최선희의 이상한 행적과 그 막후에서 이뤄진 비화 등을 소개한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실패로 이용호 외무상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이 대미협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당시 실무협상 책임자였던 최선희는 경질되지 않았다. 왜...
[학술논문]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개방 전망과 과제
...후계자로 활동하면서 북․중 경협이 현저하게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후 북한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향상’에 대해 전례 없이 강조하는 등 경제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정일 사후에는 경제관리방식의 개선 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소조(TF)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무기 수출을 제외한 군부의 외화벌이사업이 내각으로 이전되며,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되고, 내각의 위상이 높아졌다. 또한 시범 협동농장의 분조 단위가 축소되고, 독립채산제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라선과 황금평 특구도 본격적인 개발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 김정은 체제는 이처럼 김정일 시대에 비해 경제의 개혁․개방에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협동농장에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학술논문] 북한의 민군관계: 군의 성격을 중심으로
...인민성, 당성으로 요약된다. 혁명성, 인민성, 당성은 상호 연계되어 있으며 당성이 목적이라면 혁명성과 인민성은 수단의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북한의 민군관계는 군과 당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군의 성격은 군 엘리트의 보직과 업무에도 반영되어 있다. 1994∼2008년 현지지도를 수행한 군 인사들은 당 및 국가기구의 보직과 함께 비군사적 분야인 국가, 정치, 경제 행사에 참여해온 것이다. 그러나 보직과 업무는 군사 분야와 관련되어 있으며 소수의 군 엘리트가 비군사적 부문의 보직을 중첩적으로 맡고 있다. 즉, 군 엘리트의 보직과 업무에는 군의 독특한 성격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것이 곧 민군 엘리트의 기능 및 역할의 혼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군대의 역할 확대와 민군 엘리트의 분화가 공존하면서...
[학술논문] 모니카 펠튼과 국제여성민주연맹(WIDF) 한국전쟁 진상조사단
...시의회(LCC)의 노동당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LCC 보급품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 노동당 애틀리 정권 하에서 주택문제 해결과 신도시 건설이라는 중요 국책을 담당하는 도시계획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스티브니지 개발공사 총재직을 맡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한 영국 애틀리 정권은 군대를 한반도로 파견하고 군사예산을 증액하면서 의료나 교육, 주택 공급 등 국민 복지에 중요한 예산을 삭감했다. 모니카는 노동당원이었지만 애틀리 정권의 전쟁정책을 반대하며 한국전쟁의 실태를 알기 위해 1951년 5월에 국제여성민주연맹이 한반도로 파견한 여성국제조사단에 참여했다. 그녀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상과 신조, 그리고 관점을 갖는 여성들이 모인 이 조사단이...
[학술논문]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당·국가·군 관계를 중심으로
...바탕으로 분화와 집중이 이루어져 왔다. 선군시대 역시 당·군관계 변화나 군의 부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군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필요한 역할 수행을 강요하기 위한 군사기구의 기능적 분화가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동질적으로 융합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를 거치면서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는 최고지도자인수령을 정점으로 당, 국가, 군이라는 3선으로 분화되어 ① 당 총비서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당적 통제, ② 최고사령관의작전 지휘 통제, ③ 국방위원장의 군사행정 및 국방경제 통제 영역의 각기 다른세 가지 계선으로 나뉘어 작동하게 되었다. 김정은 역시 ‘당 제1비서’와 ‘당중앙군사위원장’직을 가지고 중요 군사정책과 군...
[학술논문] 북한 청년동맹의 초기 성격 연구(1946∼1948): 조직, 당과의 관계, 역할을 중심으로
...‘북조선민주청년동맹’으로 불리었다. 사회주의체제 청년단체의 기본적 기능은 ‘사상교양’이다. 1948년 11월 청년동맹(민청) 제3차 대회는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성격을강조했으며, 이는 해방 이후부터 정권 수립 시기까지 사회주의체제 청년단체로서의 성격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결성 초기 민청은 소군정의영향, 당 지도부의 다원성, 공산주의적 색채를 가졌으면서도 대중적 단체를 지향했던 점 등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따라서 당은 민청에 대한지도를 공식화하는 대신, 민청 지도 간부를 통한 인적 지도, 문화부를통한 군대 민청단체 지도 등의 방법을 통해 장악력을 강화했다. 초기 민청의 역할은 각종 사회개혁과 정권 수립 지원, 그리고 사회적 동원을 추동하는 데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