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핵무장, 전문가에 물었더니 "필요" 12% vs "불필요" 46%
안보 분야 전문가 집단은 일반 여론과 달리 독자 핵무장에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연구원이 24일 공개한 안보 분야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1.5%(매우 필요 7.7%, 필요 3.8%)에 그쳤다.
[뉴스] 정동영 "대북 '유화책' 표현은 부정확…정상화·안정화 조치"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단행한 전단 살포 중지와 확성기 철거 같은 조치에 대해 "대북 유화책이 아니라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화 조치"라고 12일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열린 '경협·교역·금강산기업단체 면담'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선제 조치들을) 대북 유화책이라고 쓰는 언론이 많은데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뉴스] 북, 트럼프 2기 대미 메시지 순해졌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 6개월간 대미 메시지 수위를 조절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부정적인 태도는 고수했지만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와는 달리 원색적인 비난을 삼가며 외교적 수사 위주의 원론적인 비판만 내놓았다. 추후 대화 국면을 고려한 행동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스] [6·25 75년] ② 北, 분단 영구화 움직임…南은 관계복원 추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김철선 기자 = 1950년 6월 무력으로 통일을 시도했던 북한은 75년이 흐른 지금,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마저도 부정하는 듯한 태도로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스] 트럼프 1기때 대북협상 맡았던 후커, 美국무차관으로 활동 개시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송상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첫 임기 때 백악관에서 대북 협상 업무를 담당했던 앨리슨 후커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최근 의회 인준 절차를 통과한 뒤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정식 취임한 것으로 9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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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통일 한반도의 국호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국호는 그 나라의 역사가 쌓아온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국호만 보고도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래서 우리의 통일 국호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분단 현대사는 물론이거니와, 단군조선부터 대한제국에 이르는 역사를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런 이름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인정한다.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이를 국호에 담으면 되지 않을까.
_(203~204p) 제2부 ‘대한’의 뿌리를 찾아서, 16장 통일 국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과학]
...있는데다, 평양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입지 조건은 순천이 공업도시로 발달하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은 평안남도 중심에 위치한 순천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러한 북한의 중앙경제와 지방경제의 역학관계를 고찰하는 것은 물론, 중앙이 아닌 ‘지방’의 관점에서 북한 사회와 시장화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한다.
부정과 긍정이라는 인식의 양극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분석하다
순천을 중심으로 구체화되는 북한의 신지역경제 메커니즘
북한경제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은 극과 극을 오간다. 공장은 멈췄으며 주민들은 먹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해 경제가 거의 붕괴 직전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이미 평양은 ‘맨하튼’을...
[통일/남북관계]
...40년간 통일 여정의 인생을 한 번 매듭짓고 나서 앞으로 여생을 또 다시 ‘통일 화두’를 재장전하고 줄기차게 나아가고자 스스로 다짐을 해보기 위함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인사들을 존경하며 함께 동행하고자 한다. 미래 통일의 비전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준비하고 도전하는 젊은 세대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부정적인 통일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순수한 민간 통일운동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 통일의 의지와 희망이다. 최근 북한 측이 남북한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별개의 두 개의 나라’라고 선포했지만 통일은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와 후손들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통일...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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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 선전이 일관된 방침을 견지한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선전 형식이 늘 일관된 것은 아니다. 영화가 예술인 한, 거기에는 어떤 형태로라도 미학적 형식(스타일)이 녹아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는 지나치게 당의 정책과 그 반영으로서의 영화라는 측면에 집중해왔다. 물론, 북한영화가 당 정책의 반영이라는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영화의 미학적 형식을 논하는 것을 도외시하는 데 대한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p302 공간이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범위와 관련한다면, 장소는 체험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의 기반이면서 문화적인 의미와 관련한다. 공간이 우리에게 완전하게 익숙해졌다고 느낄 때, 공간은 장소가 되며...
[정치/군사]
지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 나라의 희망인 미래 동량들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역사의식과 철저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작금의 교단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에게 좌편향 된 교육과 부정적 이념(사상)을 주입하는 주사파 계열의 전교조 세력들로 인하여 꾸준히 역사의 진실이 거짓, 폄훼, 평가, 날조, 왜곡되어왔다.
이제부터라도 좌편향 된 이념, 사상들이 더 이상 이 나라와 아이들의 정체성과 정신건강을 해치지 못하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만이 차세대 국가 주인공들을 바로 세우고 지키는 일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불행하고도 위태로운 안보세대(전후 2,3세대)를 바라보니 미래의 국가 안위가 심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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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980년대 초반(1980-1981) 한미관계 읽기
...자행되었던 훨씬 더 심각하고 패륜적인 탄압과 반민주적 행위에 침묵하면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반미정서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인들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외면하는 미국을 대면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정말 우리의 동맹이자 친구인지 헷갈려 하면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1980년 초반의 한미관계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인들 사이에서 점증하는 반미 감정을 고려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고 불안한 형편에 놓여있었으며 그러한 현상을 불러온 상당한 원인은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 등에 대한 기본적 가치를 부정했던 전두환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다는 데 있었다.
[학술논문] 오장환의 '윤리의식' 연구
본고는 오장환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윤리성의 양상에 대하여 규명한 글이다. 윤리란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규범에 따라 인간이 지켜야할 바른 도리와 행동의 준칙을의미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의미하는 윤리란 실천적이며 자유로운 주체가 되려는의지를 뜻한다. 공동체의 규범을 따르는 차원의 윤리란 사회가 규정해 놓은 선과악의 개념에 따르는 수동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특히 근대 초 식민제국주의가 판치던 시절의 보편적 규범이란 그 스스로가 붕괴되고 일그러진 것이었다. 이를 인식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차원에서 오장환의 윤리적 주체가 나타난다. 월북한 이후 후기오장환의 시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경도된 색채를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그의 시의 대부분은 데카당하며, 자기 부정의 색채가 두드러진다. 이는 바깥에 이미 존재하는
[학술논문]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생활문화 기초 조사-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동포와의 결혼 보다 북한이탈주민과의 결혼에 더욱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북한이탈주민은 해외동포와의 결혼에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남한주민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둘째, 남한주민은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북한주민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직업 자부심이 강했고, 남한주민은 공무원과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북한이탈주민은 공무원, 전문직과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셋째, 직업선택에 있어서 남한주민은 부모의 판단과 권유, 북한이탈주민의 경우에는 국가정책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설문조사 분석결과는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문화통합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남한주민이 북한이탈주민에게 갖는 부정적인 시각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술논문] 한국군은 6.25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바가 없고 ,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이의제기를 받지 않고 , 1919 년 베르사유 평화협상에 참석했었다 . 한국정부와 한국민들 중 상당수가 “ 통일없는 휴전 ” 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했던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궁극적으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정전협정을 준수했던 한국군이 당사자였던 사실을 부정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 이승만 정부는 국제연합군 사령부에 위임했던 군지휘권을 환수하지 않았으며 , 정전협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정전협정에 대한 준수를 약속했고 , 공산군측도 마크 클라크 국제연합군 사령관의 서한을 통해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대표권을 확인한 이후 ,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 따라서 한국군은 정전협정의...
[학술논문] 한국전쟁과 타이완(台灣)의 지위
...상태로 바뀌어갔다. 타이완은 한국전쟁으로 가장 수혜를 입었다. 국민정부는 붕괴 직전에 극적으로 회생하여 타이완의 안전보장과 법률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타이완의 국민정부는 반공의 보루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은 성공을 거두었다. 타이완은 스스로 독자성을 상실하는 대신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길을 택했다. 미국은 국민정부가 타이완을 통치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국민정부는 미국의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다시 미국의 파트너가 되었다. 이는 국민정부가 당시 상황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장제스와 국민정부가 편승한 측면보다는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